Game2015. 10. 7. 22:38

 하제님 리퀘스트 - 소재는 낙엽 + 커플링 + 낡은 가죽장갑


 그는 성당에서 나와 평소 가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람은 아이들이 맞기에는 조금 찼고, 성인이 맞기에는 적당했다. 길가에는 막 떨어지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사방팔방 흩날리고 있었다. 그네들의 요란함이야 모든것을 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광경이라는 걸 아는 그는, 평소라면 손을 저어 털어냈을 낙엽을 그대로 제 어깨 위에 올려 두었다.

 드물게 하늘이 맑았다. 그는 비현실적인 그 공간을 떠올린다. 사망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전략은 있어도 모략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는 자신의 이상을 펼쳐 보였다. 안개의 영향력을 제하더라도 그는 액자 안에서 가장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사이퍼였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 그는 안개가 깃든 물건들은 대부분 액자 속에 남겨두고 떠났다. 사적으로는 연인의 손이 닿았던 갑주와 그당시를 기억할 물건을 몇 개 남겼. 갑주는 저택에 잘 보관해 두었다. 반지 한 쌍은 코트 안 주머니에 항상 들어가 있는 신세다. 다 헤진 장갑은 그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그는 홀로 이 거리에 서 있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때면 주저없이 명예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그 탓에 전쟁이 끝나고 나면 영원히 안식을 취하고 있을 사이퍼로 가장 먼저 손꼽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안식을 취하고 있으나, 영원한 안식은 아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본 근무지인 아틀라티코 드라군으로 돌아가야 하며, 실제로도 그럴 준비는 끝마쳐둔지 오래였다. 그가 한 공간에 목적없이 이토록 오래 머물고 있는 이유는 하나, 한 줌 남은 미련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그를 보고 싶었다. 헛된 욕심이라도 단 한 번, 그를 볼 수 있다면. 그는 주머니 안에 넣어둔 반지 한 쌍을 제 손 안에 두고 굴리다가, 소중히 그러모아 제 품에 다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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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Game2015. 10. 3. 20:10

 아이는 제 눈 앞에 놓인 케이크를 바라보기만 했다. 케이크 위에는 자그마한 딸기가 하나 올라가 있었고, 결 마다 초코가 발려 있었다. 시럽을 한 번 덧발랐는지 유독 케이크는 반짝거렸다. 보기만 해도 단 내가 풍겨오는 듯 했다. 기실 작은 티 테이블 위에 놓인 것들은 다 그랬는데, 한쪽엔 초코가 왕창, 다른 쪽에는 슈크림이 왕창, 가운데에는 두 가지가 섞여서 왕창, 그 위에는 시럽을 또 한 번 왕창, 하는 식이었다.

"도련님."

"네, 아니, 응."

"다리오 경 께서 늦으실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동무가 되어드릴까요?"

"아, 아니요."

"아니면 다른 케이크로 바꿔 드릴까요?"

"아니! 아니! 괜찮아! 괜찮아요."

 바꾸면 바꿀수록 제 것보다 더 단 케이크가 제 몫으로 떨어지는 걸 여러번 겪었던 아이는 허둥지둥 손사래를 쳤다. 사용인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 말하고는 아이의 등 뒤로 물러났다.

 아이는 셔츠로 제 눈을 슥슥 부볐다. 주변에는 달큰한 향내가 가득 풍겼다. 평생을 구두공장에서 살았을 아이에게 요원한 일이었다. 아이의 어미와 아비조차 겪어본 적 없을 것이다. 당장 아이는 제 몸에 닿을 셔츠가 이만큼 하얄 일도, 구겨진 흔적 하나 없는 바지를 입을 일도 없었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닿은 아이에게 평화롭기 그지없는 저택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근래들어 세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굶주린 사람이 어떤 저택에 들어가면 귀족이 되어 나온다는 식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동화속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는 곧 잊혀졌지만 저택은 건재했고, 저택의 주인도 여전히 그 저택에서 살았다. 나이가 넘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말고는 흠잡을 곳 없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큰 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름 높은 이였다.

"오셨습니까."

"음."

 그는 외투를 건네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열흘 만의 귀환이었지만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말끔해 보였다.

"다리오 경은?"

"서재에 계십니다."

 다리오 드렉슬러가 공식적으로 다리오 가에서 제명된 지 오래였지만, 그는 저택 안에서 여전히 귀족으로 대접 받았다. 당사자는 그럴 때 마다 질색하며 칭호를 거두라 일렀지만 저택의 주인이 거듭 일러두었으므로 사용인들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준비가 끝나면 부르게."

 그는 계단을 오르며 지난 밤 눈꺼풀 너머에서 본 모습을 떠올렸다. 눈에, 저를 안고 다가와 안기는 모습이 선했다. 그는 업무로 저택을 비운 기간 내내 제 것이되 제 것이 아닌 그에게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제가 보는 그의 모습이 어떤 형태였는지 그 끝을 정해두지 않은 채로 전부 본 셈이다. 그는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 자신의 밑바닥을 볼 줄은 몰랐기 때문에, 호텔 침대맡에서 일출을 볼 때 마다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다녀오기 전 처럼, 계단을 올라 몸을 틀어 거닐면 저쪽 끝 방에 있을 당신을 안다. 업무를 처리하고 있거나,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등을 맞댄 시간을 믿기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그의 작품과 같아 그가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알베르토?"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마자 그의 모습을 보고 마는 것은.

"내 사랑."

 감히 운명을 입에 담았다. 수십 가지의 생각이 씻겨내려가고 자신이 그의 앞에 서 있다는 것 하나만 남았다. 보름 만에 다시 본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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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Game2015. 9. 13. 02:15

 


그는 알베르토 로라스의 죄로서 존재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는 당당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다리오 드렉슬러의 시야 내에서 그들은 자기 자신을 맹신하는 이에 지나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코를 막은 뒤 입 안에 먹을거리만 집어넣어도 어떤 음식인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건만, 훨씬 더 민감한 영역일 감정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직감 하나만 가지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믿음직스럽단 말인가?

 제게 달려들었던 이의 믿음이 굳건해질수록 그의 믿음은 수직으로 처박혔다. 그는 믿음과 함께 시선까지 수직으로 내려 방바닥을 뒹굴던 옷가지를 헤집었다. 그새 구김이 가 있어 평소라면 한 벌 따로 꺼낼 일이었지만,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원칙을 버릴 수 있었다.

 원칙?

"쯧."

 그의 언어는 아니지만 "원칙"대로라면 그는 한참 전에 알베르토 로라스를 쳐냈어야 했다.

그에게 애정이 생겨나기 전, 좀 더 가자면, 제 뇌리에 어느새 그의 신념이 처박히기 전, 끝까지 가자면, 그 전.


 알베르토 로라스의 작위는 안정적이었다. 이 시대에 와서 작위란 통상적인 권위는 거의 희석되었지만 어떤 영역에서는 여전히 유효했다. 그 즈음 가문을 나온 지도 제법 되었던 차에 자본을 마련하고자 안정적인 수요를 찾던 드렉슬러는 시선을 위로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명석한 그는 곧 제가 던져두었던 작위가 발판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발판이 되어 줄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나 그는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 놈만 잘 뚫어놔도 될 것 같은데."

 그에게 권위는 허점투성이의 비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뛰쳐나왔지만, 그는 그 시스템에서 태어나 살다 나온 이였으므로 어느 부분이 허점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구식의 시스템은 구식으로 뚫으면 그만이었다.

 입소문 한 번이면 그네들은 쉬이 제 재산을 맡긴다.

 그렇다면 한 번만 뚫으면 될 일이 아닌가?

 제 무구에게 어울리는 귀족 한 사람만 있으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다. 드렉슬러는 제 무기의 상징이 되어줄 이를 찾기 시작했다. 강인할 것, 여기서 80 퍼센트는 나가떨어졌다. 신실할 것, 90 퍼센트가 추가로 미끌어졌다. 제가 만들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할 것, 단 한 명만 남았다.

 신념을 무기삼아 능력을 사용하는 자.

"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 또한 인간이었다. 

"알베르토 경은 공적인 업무가 아닌 경우 한 달에 두세 분의 방문만 받고 있습니다."

"……."

그는 넌덜머리를 내며 가문을 나온 이유가 귀족성 그 자체였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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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Game2015. 9. 3. 23:28

 회사는 능력자들과 깊게 관계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회사였다. 금전이나 지위를 분배하는 방식은 비교적 성과 위주였고, 업무는 능력을 기반으로 분배했다. 덕분에 타국 출신인 그도 회사의 업무에는 비교적 충실히 임했다. 그렇다보니 바쁠 때 자신을 부르는 상관이란 썩 좋은 존재는 아니었다.

"오늘 바쁘다. 빨리 끝내라."

"알겠습니다. 바로 말씀드리죠. 저번에 주신 보고서 기억하십니까?"

 두 사람은 회사 밖에서도 개인적으로 속내를 터놓는 사이였지만, 크루그먼의 성격상 회사 내에서는 절대로 그에게 말을 편히 하지 않았다. 한동안 업무상 직책과 대비되는 두 사람의 기묘한 어투는 화제가 되려다가, 다리오 드렉슬러가 제명되면서 급격히 가라앉고 '귀족들이란', 하는 시선과 제명에 관한 이슈만 왕창 부풀어 올랐었다가, 이제는 그나마도 가라앉아 있었다.

"아공간?"

"예."

 크루그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 하나를 꺼내 건넸다. 맨 앞장에, '능력자 간 전투 공간 추가 개방에 관한 보고서'라고 쓰여 있었다. 찰나,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 일지를 보고는 괜히 이사는 아닌가 보군, 따위의 가벼운 생각을 하다가 그의 손을 정중히 사양했다.

"아서라. 전부 기억 난다."

"좋습니다. 많이 바쁘신 모양이군요. 그럼. 제일 중요한 점은 어떤 부분입니까?"

 그는 크루그먼이 2인자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 이상의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요약정리를 바라며 물어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능력자 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었다."

 보고서에는 지나가듯 언급되어 있던 내용이다.

"초기 의도와 반대되는 일이군요."

"예상 못한 건 아니었잖아?"

 공격적인 능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생겼으니 법보다 주먹이, 주먹보다 능력이 우선일 것이고,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기틀을 잡기 전까지는 당분간 계속 그럴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보고서는 마무리 되어 있었다. 능력자 안팎으로 어수선한 시대에 갈등이란 제법 큰 위험부담이었다.

"범위 안이라고 해도……. 큰 편입니다. 외부에서 위협이라고 볼 소지가 충분한 수준이더군요."

"그렇겠지. 클랜 간 싸움으로 번진 경우도 제법 되니까. 그래서?"

 드렉슬러는 슬슬 본론이 듣고 싶었다.

"회사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빨라."

"회사측에선 손실을 최소화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더더욱 안 되고. 연합에서 어떻게 나올지 보고 결정해도 안 늦는다."

 크루그먼은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봤고, 그도 질세라 눈길을 맞부딪쳤다. 진심이었다. 두 사람 다 서로와 기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크루그먼은 보고서를 다시 갈무리할 겸 시선을 돌렸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군요."

"지금 개입했다간 부작용을 회사가 전부 부담하는 꼴이고. 어차피 처리할 거, 나눠서 해."

"알겠습니다."

 크루그먼은 그를 내보내려다 문고리를 잡은 그를 돌려세웠다.

"아,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왜."

"알베르토 경이 부탁하고 가신 물건입니다."

"그놈 아직 안 돌아왔을텐데?"

"외근 가시기 전에 시기까지 알려주고 가셨습니다. 가져가시죠."

 크루그먼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물건을 받아들며 크루그먼의 집무실을 나섰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기나긴 외근중이었다. 그의 힘이 필요한 곳이라면 귀족으로서의 지위가 필요한 곳이 아니면 무력을 사용하는 장소였으므로, 그는 알베르토 경의 외근을 대놓고 귀찮아했다. 알베르토 경의 업무가 끝난다는 것은 곧 그의 업무가 쌓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업무를 수행하느라 손상된 장비들을 손보는 것도, 외근이 끝난 뒤 알베르토 경의 상태를 점검하는것도 순전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한 몇 년을 보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인데, 그냥, 그날따라, 드렉슬러는 궁금했다.

 왜?

 알베르토 경이 그의 주요 고객이기는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그 범위를 한참 넘어 있었다. 창 만들어 달랬으니 창이나 쥐여주면 그만이고, 갑주 만들어 달랬으니 갑주 만들어 놓으면 그만인 것을, 그를 수행하는 사용인들보다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것 까지는 없다. 요컨대.

 내가 그놈 상태까지 체크할 건 없잖아?

 그것도 썩 중요한 깨달음이었지만, 그는 그 생각을 떠올리자 마자 좀 더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놈이 나한테 이걸 다 맡길 이유도 없잖아?


"그런가?"

"그래."

 알베르토 경이 잉글랜드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머잖아 저를 찾아온 알베르토 경에게 대뜸 제 생각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그는 얼굴을 붉혔지만, 곧 잔기침을 몇 번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말했다.

"사과하지. 자네에게 부담일 거란 생각을 못 했군."

"아니."

 그러나 드렉슬러는 요상하게 표정을 구기며 받아쳤다.

"난 상관없는데, 너."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군."

"모르겠다고?"

"그래."

 드렉슬러는 답답하다는듯 죽 이어갔다.

"네 무구도 모자라서 네 사생활까지 전부 나한테 풀어놓고 있다고. 내가 다른 맘 먹으면 한 방에 갈 정도로."

 알베르토 경은 그의 말을 경청하더니,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드렉슬러는 이제서야 깨우친 듯한 눈앞의 드라군에게 조금 더 아량을 베풀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놈들한테도 이러냐?"

"그럴리가 있겠나. 그냥……."

"그냥?"

"기쁘군."

"기쁘다고?"

 검룡이 광룡이 됐나?

"이제라도 알아줘서……. 말이야."

"뭐?"

 뭘 알아줘?

"오늘 자네 생일이기도 해서 저녁에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드렉슬러."

 자각하지 못했지만, 드렉슬러는 잉글랜드로 건너온 이래로 가장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맞은편에서, 알베르토 경은 그 못지않게 멍청한, 혹은 민망함이 섞인 이상한 얼굴로 말했다. 그와중에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리는데.

"잠깐."

 드렉슬러는 어떤 내용이 나올지도 모르면서 들어선 안 될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잠시 멈춰보고자 했으나.

"난 예전부터 자네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잠깐만."

"목숨을 맡겨도 될 사람이자, 뒤돌아서면 곁에 있어줄, 그러니까."

"알베르토 로라스."

 그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말했다.

"자네를 사랑하고 있었어. 예전부터."

"야, 멈추라니까. 잠깐. 뭐?"


 무슨 소리야?





드렉슬러 생일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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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Game2015. 7. 12. 00:24

 https://twitter.com/BAKhanul_/status/598237453787377664 에 대한 조공 토막.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그의 공방은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그가 기거하는 모든 공간을 의미했다. 길바닥, 살롱, 창고극장. 로라스는 언젠가 자선 파티에서 공간을 가득 메우던 탐욕을 떠올렸다. 석탄, 철 따위를 거쳐 땅으로 흘러나가던 순간, 온 세상이 제 것인 그는 다른 곳에 서 있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공간이 제 것이 된다, 라. 문자 그대로라면 로 많은 이들이 탐낼 능력이었다. 다른 이들이 채가기 전 그의 곁에 선 것에 대해 로라스는 약간의 자긍심까지 느끼고 있었는데, 바로 전날 밤만 해도 드렉슬러는 그의 능력을 증명해보였고 그것이 퍽 만족스러웠기 때문다.

"잘 봐둬."

 여긴 내 거야.

 그는 로라스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손 끝에서 선율은 공간과 부딪치며 또다른 선율을 만들었다. 그네들은 요정과 같아 제 몸을 마음껏 퉁기며 세상밖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다른 그네들의 모습에 귀를, 시선을, 모든 것을 내주었다, 보이기에도 누리기에도 실로 완벽했다. 로라스는 한껏 고양되어 모든 것이 끝난 뒤 그를 찾았고, 그대로 둘은 와인 한 병을 함께 마셨던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날 그가 드렉슬러의 공방 문을 열어젖힌 것은 순전 충동이었다. 실은, 공방이라는 말도 드렉슬러가 거기서 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붙일 수 있었다.

 그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로라스의 안목은 뛰어났으나 그에게 허락된 것은 이 곳이 어디인지 분간할 수 있는 정도였다. 실로 이곳은 드렉슬러의 공방이었다. 다른 이의 범접을 용서치 않을 그만의 세계에서, 그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눈을 찡그렸다. 신의 영역이 아닌가? 그렇다면 제 앞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누구도 오지 않는 한낮의 무대 뒤, 아무도 모르는 새 내려와 제 영역을 만들고 사라지는 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우연히 신을 발견한 자, 그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인가?

"으그─"

 손을 뻗었다. 순간의 일이다. 

"신기루는 아닌가?"

 미동은 없고 눈길만 제게 주었다. 세상 밖에서 공간을 만드는 이 치고는, 현실적이었다. 뭉개진 발음이 저는 사람이라 외치고 있었으며 한낱 인간일 자신에게 손목을 붙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 또한 그의 한계를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가 마련해준 자리에 제 안목대로 차려입은 이의, 순전 귀찮아서 그랬겠지만, 시선.

 그는 거기에 막 홀려버린 참이다. 설령 다리오 드렉슬러의 존재가 신기루라 하더라도 그 또한 신의 흔적이 아닌가. 그는 인간의 세상에 친히 내린 신의 흔적을 제 손에 넣기로 마음먹었다.

 눈길을 맞대었다. 공간 몇 조각이 공간 사이에 흩어지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했다.


 시공이 잦아들었다. 둘 만의 세계에서 그들은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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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Game2015. 6. 14. 02:13





 사내는 선택해야 했다. 이유모를 애정이란 거부감과 무기력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사랑이야."

 외면, 회피, 부정……. 온갖 감정들을 행상인마냥 늘어놓아도 자신의 감정을 진리로 삼은 양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이 제 앞에 있었다.

"자네만 생각하는 나를 봐. 어떻게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닐 수가 있지?"

 사내는 이런 이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전 까지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처럼 굴다가 손에 넣게 되는 순간 모든 열정이 식어 떠나버리는 사람이라면, 쟁취했다는 감정만 누리게 해주면 된다.

"대답을 원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구태여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당신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사내는 그가 없는 미래를 그렸다. 아렸고, 행복했다. 

"끝나고 와."

 안녕. 미래였을지 모를…….


 사내는 손을 뻗었다.

 그는 쉴새없이 입맞추며 사내의 옷가지를 끌러내렸다. 사내는 간혹 제 옷가지를 벗기는 손길엔 시선을 피하였으나 간혹 시선을 들 때면 환희에 차 그 어느때보다 빛나는 이를 목도할 수 있었다. 사내는, 그 모습을 제 심장에 새기곤 눈을 감았다.

 셔츠가 먼저 끌러졌던가 버클이 먼저 풀렸던가. 어느쪽이건 사내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지금 사내는 제 위에 올라탄 이를 어떻게 하면 빨리 떠나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바빴다. 성향과는 별개로 그는 좋은 고객이자 조언자였다. 그것까지 놓고 싶지는 않았다. 이기적이군. 사내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옷가지가 몸을 떠나 바닥에 새 거처를 마련했다. 몸이 조금 떨렸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는 사내는 몸이 떨리는지 마음이 떨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어림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너의 원죄였던가.


 사내는 의식을 가라 앉혔다. 의식은 감정에 파묻혀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Posted by _zlos
Game2015. 5. 26. 23:59


"이건 우리 공주님께 온 편지고, 이건... 알베르토 경!"
"무슨 일인가?"


편지가 왔다.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연구실 - 회사 - 트와일라잇 혹은 수련장 - 숙소를 벗어나지 않는 드렉슬러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의 일상에 우체통을 본다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어느새 드렉슬러의 우편물은 로라스에게 제일 먼저 전해지고 있었다. 문제라면 당사자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인데, 결국엔 드렉슬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반응일지 호타루의 주도하에 내기판까지 벌어질 지경이었다.

"화내실 것 같지 않어요? 다리오 경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자기 자신일텐데.."
"아예 관심 없을 것 같지 않아?"

진작에 말릴 사람들까지 끼어들어 판이 커지자 평소 펜팔때문에 우체국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엘리셔가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 그래서 다리오 경에게 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받을 수 있는 돈이 무척 늘어날거라고 하셨거든요. 요즘엔 아예 알베르토 경에게 한꺼번에 보낸다고 해요."

드렉슬러는 커다란 펍을 하루 종일 빌릴만큼의 돈이 걸린지도 모른채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냐? 어쩐지 편하더라. 이왕 받은김에 확인도 대신 해달라고 전해줘. 클랜 관리까지 하느라 신경쓸 게 너무 많아. 귀찮아 죽겠어."


로라스는 익숙하게 편지 봉투를 뜯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지만, 신뢰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ㅡ드렉슬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말이었으나 엘리셔를 거치자 믿을만한 사람에게 특별히 한 부탁으로 바뀌어 있었다ㅡ그는 어느새 드렉슬러의 앞으로 오는 것들은 자신이 먼저 뜯어보고 있었다.

<< 정기 동창 모임 >>

"벌써 때가 그렇게 됐나."

로라스는 편지를 다시 봉투 안에 넣고 통째로 한쪽 구석에 밀어넣었다. 세월 참 빨리도 지나간다 싶었다. 두 사람 다 일곱 살에 황실의 선택을 받았고 똑같은 훈련과정을 거쳤지만, 처음 만난건 열 다섯 살, 성년식을 치른 뒤 수도에서였다. 그 전 까지 모든 것을 견뎌낸 아이들이 수도에 모여 다 같이 성년식을 치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바로 그 때, 상극으로 벌어져 있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것이다.


"엄연히 말하면 동창은 아닌 셈인가?"



140831 씀.

Posted by _zlos
Game2014. 12. 8. 02:30

고백데이 기념 로라드렉. 이 백일


1. 9월 17일.

"사랑하네. 드렉슬러"

그의 고백은 담백했다. 그는 장미꽃다발 대신 새하얀 진실만 준비해 내밀었다. 어찌나 하얬는지, 평소라면

"낯간지럽게 무슨 소리야?"

하며 농담이라는 식으로 넘겨버렸을지도 모를 드렉슬러 조차 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가, 싶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게 했다. 그는 드렉슬러에게 대답을 종용하는 대신 이정도는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의 옆에 서서 대신 업무를 봤다.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건지, 로라스가 클랜 승인을 두 건, 관리비 위탁을 여섯 건 처리할 동안 그는 로라스의 동선을 따라 시선만 움직일 뿐 그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드렉슬러를 바라보던 로라스는 클랜 가입 신청서를 받으며 오전 업무를 마감짓고는, 작게 웃으며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2. 6월 10일.

나는 그 여름날을 기억한다. 고국보다 훨씬 서늘했던 트와일라잇이 그맘때쯤 유독 푹푹 쪘다. 공기도 바싹 말라선 이대로 가다간 다 죽겠다며 앓는 소리가 났고, 하루가 멀다하고 싸워대던 회사와 연합조차 일시 휴전을 거론하며 회의를 잡았다. 난다 긴다 하는 사이퍼들 조차 쉽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이례적인 더위에, 양 측은 한 번 쯤은 터질 줄 알았던 충돌 한 건 없이 휴전에 합의했다. 오죽했으면 그 홀든도 축 쳐져선 아무말 없이 퇴근했었지.

"다리오. 있나?"
"들어와."

지금와서 생각하는건데, 네가 날 찾아온 그날이 그렇게까지 덥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너를 자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넌 그날도 갑주를 갖춰 입곤 투구까지 쓰고 왔고, 나는 그런 너에게 질려버려선 보는 사람마저 더위에 쪄죽게 만들 셈이냐고 네게 한 소리 했었는데, 그때 너는 변명 대신 그런가, 하며 투구를 벗었다. 아니나 다를까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과장 좀 보태서 난 그때 네가 땀으로 세수라도 한 건 아닌가 싶었다.

"너 빨리 씻고와라."

해서 난 너를 욕실에 막무가내로 들여보냈ㅡ아니, 정확히 말하면 밀어넣었다. 너는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 있는 욕실을 보곤 갑옷을 벗어 내게 내밀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네 무구를 받아다가 잘 세워뒀다. 좀 더 사려깊은 놈들이라면 입을 옷가지 정도는 준비했겠다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어쨌거나 나는 다른이들이 말하는 그 무신경함 덕분에 네 무구를 살펴볼 기회가 생겼던 셈인데, 지금도 똑똑히 기억할 만큼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안 그랬으면 그 더위에서도 네 갑주를 부위별로 살펴보면서 무게는 어느정도고 내구성은 얼마나 튼튼한가 마구 써내려갔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죽이는데."

하지만 그건 천하의 너라도 무례하다고 받아들일 소지가 충분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무구는 목숨이었다. 그때 내가 했던 행동은 허락 없이 네 목숨을 건드린 것과 다름 없었다. 하물며 네가 다 씻고 나올 때까지 나는 네가 내 연구실에 들렀다는 사실마저 슬쩍 까먹을 뻔 했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도 너는 조금 놀라는 듯 하더니, 곧 웃으며 내게 다가와서는.

"다리오, 옷 좀 빌려주겠나?"
"어.........어."

너는 언제부터 내게 네 목숨을 맡기고 있었던 것일까. 전부 다 버렸는데도 너는 기어코 나를. 나는 그것이 누구에게나 친절한 너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을 분명 알고 있었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너는 비슷한 반응이었을게 분명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네 박애에 가까운 무언가에 그렇게 속절없이 이끌려 버렸다.



3. 12월 25일?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여름날 한 가운데에서 어서 겨울이 왔으면, 하고 추위를 갈망했다. 너를 생각할 때 마다 내 주변은 전투 조차 쉬게한 그 더위는 전부 날아가버렸고, 대신 그보다 훨씬 뜨거운 너로 가득 차버렸다. 그러다가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지면 혹시 더위 먹은게 아닐까 머리라도 감고 나오면 좀 나아지겠지 싶어 욕실에 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여기 머물렀음을 떠올리고는 거품도 다 닦지 못한 채 뛰쳐나왔다. 그런 나를 진정시킬 수 있는건 단 한 가지 뿐이었다.

이러면 뭘 하나, 어차피 나 혼자 바둥대는건데.

웃긴건 그렇게 한 번 가라앉아도 너는 떠날 생각조차 않고 내 주변을 빙빙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너를 떠올릴때면 나는, 그래도 너만큼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리곤 했다. 갈망이라기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그것들은 얄궃게도 감정적으로 무방비한 상태일때만 튀어나와서 나는 방비책 하나 세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했다.
그럴때면 나는 겨울 중에서도 성탄절이 왔으면 했다. 너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고, 난 연구실에서 홀로 밤을 지새다가 옥상에 올라가 별을 바라보는 그 때가 되면, 너도 버리고 홀로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시금 혼자 서 있다 보면 너도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4. 9월 17일.

"언제부터..."

드렉슬러는 장장 여섯 시간만에 간신히, 그것도 말이라 하기엔 민망할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맞은편에 앉은 로라스는 먼저 음식을 주문하고는, 여전히 얼이 빠져 있는 드렉슬러를 바라봤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웃음은 이제 익숙했다.

"한참 전부터."


5. 6월 10일.

나는 그 여름날을 기억한다. 무척 더웠던 그 날, 나는 네 연구실에 들렀다. 어찌나 더웠는지 공성전마저 잠시 멈추자 합의했었기에 무장을 갖추고 다닐 필요는 없었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엔 어쩐지 더 진지해져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무장을 갖추고 가곤 했다. 그렇다곤 해도 슬슬 투구에 땀이 차고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네 한 마디 말에는 그리도 약했다.

"보는 사람 쪄죽겠다. 좀 벗어라."
"그런가."

대번에 그가 앓는 소리를 냈다. 좀 끈적하기는 했다. 이내 그는 결심했다는 듯 다짜고짜 등을 밀어 제 욕실로 데려갔고, 물기를 걱정하던 나는 곧 바싹 말라있는 욕실 바닥을 보고는 밖의 날씨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래, 그가 허튼 짓을 할 리가 없지. 무척 맹목적인 믿음이었지만, 그 만큼은 믿고 싶었다. 나는 갑옷을 벗어 그에게 건넸고, 신나서 달려가는 그를 보며 웃음지었다. 사실 저는 저 웃음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던가. 나는 이미.



6. 9월 17일.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 하면.




7. 12월 25일.

"야, 너 오늘이 딱 백 일 째인건 아냐?"

드렉슬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가? 어쩐지 하늘이 맑더군."

로라스는 더 말하지 않고 드렉슬러를 끌어안았다. 사내 파티라고는 해도 24일 저녁에 시작한 파티는 이미 막바지였을 것이 뻔했다. 농땡이 아닌가, 싶던 로라스도 그의 손에 이끌려 나오고 보니 조금 춥긴 했지만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내일도?"
"내일도."
"그럼 별이나 보러 가야겠다."
"음."

그는 곤란하다는 듯 턱을 긁었다. 드렉슬러는 저와 달리 일정이 있을 로라스를 눈치채고는 바로 사과했다.

"아, 어, 미안. 자선 파티 가야되지?"
"아니, 아닐세. 그건 큰 문제가 안 되네. 대리인을 대신 보내도 되고.."
"괜찮겠냐?"
"물론. 다만 미리 사과하지."

뭘? 하는 드렉슬러에게, 로라스는 귀엣말로 속삭였다.

"자네는 오늘 못 자."



8. 3월 3일.

나는 어쩌면 자네를.




140917 씀.

Posted by _zlos
2014. 9. 1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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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2014. 9. 15. 02:04

다리오 부인이 임신했을 적에, 다리오 가 사람들은 부인의 뱃 속에 있는 아이가 남자아이인것 같다는 의사의 말만 믿고 미리 드렉슬러라는 이름을 받아뒀었다. 그런데 웬걸, 임신 기간이 길어지면서 다시 확인했더니 아이의 성별이 여자였던 것이다. 다리오 부부는 아이를 준비해뒀던 물건들을 대대적으로 갈아치워야 했었지만, 이미 받아둔 이름을 바꿀 필요는 없겠다 싶었는지 아이는 드렉슬러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렉스, 내 왕이 되어줘.

……로라스는 그 당시의 다리오 부부의 선택 덕분에 제 청혼 문구가 그럭저럭 괜찮아진게 아닌가 하고 프로포즈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청혼을 받은 그녀는 드물게도 시선을 피한 채ㅡ평소엔 그리도 당당하던 사람이다ㅡ 로라스 품에 숨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도리질을 쳤고, 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린 덕택에 그 모습은 로라스 혼자서 차지할 수 있었다.

"로라스."

아, 그녀의 목소리. 로라스는 저도모르게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자각하지 못한 채, 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침실로 걸어갔다.


로라스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로망은 오월의 신부였다. 매스컴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미지이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지식 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그에게 딱 어울린다며 낄낄대는 친구들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기어코 그는 오 월의 마지막 날에 간신히 결혼식 날짜를 맞춰 제 로망을 실현해보였다.

"생일 축하해, 렉스."

그는 드렉슬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잠에서 막 깼는지 앉아서 눈만 비비고 있던 그녀는 익숙하게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응,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러곤 서로 마주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씩 웃고 마는 아침이다.

"아이도 제 어머니가 생일인 걸 알아야 할텐데."

로라스는 드렉슬러에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그 로라스에 그 드렉슬러면 아이도 장난아닐거라며 부부의 주변 사람들을 한껏 긴장시켰던 뱃속의 아이는 의외로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다. 저번 달 쯤에 닥쳐온 입덧도 평범한 이들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입덧도 거의 다 끝나가는 걸 보면 이미 알고 있었던걸지도 모르지."

굳이 특이한 점을 말하자면 두 부부가 입덧을 같이 앓았다는 것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이젠 막바지였다. 담당 의사는 두 사람이 같이 앓으니 다른 이들의 입덧보다 조금 빨리 끝나는 걸지도 모르겠다며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군."

로라스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빈 컵을 건네 받아 작은 탁자 위에 올려두며 장난스레 한 마디 덧붙였다.

"어머니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 생일을 알고 챙겨주다니, 아주 똑똑한 모양이지."

그녀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그런 거 한 번 정도 기억 못 할 수도 있지, 뭘!"
"하하."

그는 너스레를 떨며 그녀를 제 품에 가뒀다. 햇살 가득한 향이 난다고 생각하며, 그는 가만가만 드렉슬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오늘이 내 생일인걸 알게된 이상… 오늘은 집 밖에 안 나갈거야. "

로라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데이트 신청하면?"
"음."

드렉슬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나부터 씻을래."
"그러게. 그동안 못 먹었던 것들이나 실컷 먹으러 가지."

아닌 척 했었지만 그도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필이면 평소에 그리 좋아하던 아로스 네그레가 말썽이어서 봤다 하면 입을 틀어막아야 했으니. 보나마나 점심은 자주 들렀던 곳일거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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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