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2015. 10. 16. 21:50

 서른 둘의 알베르토 로라스는 공식적으로 서른 넷의 다리오 드렉슬러의 보호자였다. 이유인 즉슨, 알베르토 로라스의 연령이 실제로는 서른 둘에 몇백을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행보는 다리오 드렉슬러를 보호하는 것에서 그쳤으나, 몇년 전 그가 입양해 또다른 알베르토가 된 소년은 다리오 드렉슬러 또한 자신의 부모로 대했다. 그 결과, 알베르토 로라스는 가문을 등에 업고도 중앙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군인은 훌륭한 무기였으나, 버팀목이 되어 줄 가문이 둘이 아닌 하나인 귀족은 중앙 정계에서 살아남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는 몇백 년을 살아오면서 인간 사회는 겪을 만큼 겪어 그에 대한 미련은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꺼이 중앙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리오 드렉슬러는 그런 친우의 태도를 항상 안타까워 했다.

"나는 괜찮아."

 때때로 로라스는 직접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네가 있던 곳은 여기가 아니잖아."

 로라스는 그런 그를 보면서, 원했다면 이미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마침 불어온 바람에 날려 보냈다.

 강단 있는 나의 사람, 모두가 굳고 까칠하다 하여도 내 눈에는 영원히 여리고 어리게만 보일 나의 친우, 영생을 보내며 결국 찾아낸 나의 어린 반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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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Game2015. 10. 7. 22:38

 하제님 리퀘스트 - 소재는 낙엽 + 커플링 + 낡은 가죽장갑


 그는 성당에서 나와 평소 가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람은 아이들이 맞기에는 조금 찼고, 성인이 맞기에는 적당했다. 길가에는 막 떨어지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사방팔방 흩날리고 있었다. 그네들의 요란함이야 모든것을 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광경이라는 걸 아는 그는, 평소라면 손을 저어 털어냈을 낙엽을 그대로 제 어깨 위에 올려 두었다.

 드물게 하늘이 맑았다. 그는 비현실적인 그 공간을 떠올린다. 사망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전략은 있어도 모략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는 자신의 이상을 펼쳐 보였다. 안개의 영향력을 제하더라도 그는 액자 안에서 가장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사이퍼였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 그는 안개가 깃든 물건들은 대부분 액자 속에 남겨두고 떠났다. 사적으로는 연인의 손이 닿았던 갑주와 그당시를 기억할 물건을 몇 개 남겼. 갑주는 저택에 잘 보관해 두었다. 반지 한 쌍은 코트 안 주머니에 항상 들어가 있는 신세다. 다 헤진 장갑은 그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그는 홀로 이 거리에 서 있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때면 주저없이 명예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그 탓에 전쟁이 끝나고 나면 영원히 안식을 취하고 있을 사이퍼로 가장 먼저 손꼽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안식을 취하고 있으나, 영원한 안식은 아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본 근무지인 아틀라티코 드라군으로 돌아가야 하며, 실제로도 그럴 준비는 끝마쳐둔지 오래였다. 그가 한 공간에 목적없이 이토록 오래 머물고 있는 이유는 하나, 한 줌 남은 미련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그를 보고 싶었다. 헛된 욕심이라도 단 한 번, 그를 볼 수 있다면. 그는 주머니 안에 넣어둔 반지 한 쌍을 제 손 안에 두고 굴리다가, 소중히 그러모아 제 품에 다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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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Game2015. 10. 3. 20:10

 아이는 제 눈 앞에 놓인 케이크를 바라보기만 했다. 케이크 위에는 자그마한 딸기가 하나 올라가 있었고, 결 마다 초코가 발려 있었다. 시럽을 한 번 덧발랐는지 유독 케이크는 반짝거렸다. 보기만 해도 단 내가 풍겨오는 듯 했다. 기실 작은 티 테이블 위에 놓인 것들은 다 그랬는데, 한쪽엔 초코가 왕창, 다른 쪽에는 슈크림이 왕창, 가운데에는 두 가지가 섞여서 왕창, 그 위에는 시럽을 또 한 번 왕창, 하는 식이었다.

"도련님."

"네, 아니, 응."

"다리오 경 께서 늦으실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동무가 되어드릴까요?"

"아, 아니요."

"아니면 다른 케이크로 바꿔 드릴까요?"

"아니! 아니! 괜찮아! 괜찮아요."

 바꾸면 바꿀수록 제 것보다 더 단 케이크가 제 몫으로 떨어지는 걸 여러번 겪었던 아이는 허둥지둥 손사래를 쳤다. 사용인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 말하고는 아이의 등 뒤로 물러났다.

 아이는 셔츠로 제 눈을 슥슥 부볐다. 주변에는 달큰한 향내가 가득 풍겼다. 평생을 구두공장에서 살았을 아이에게 요원한 일이었다. 아이의 어미와 아비조차 겪어본 적 없을 것이다. 당장 아이는 제 몸에 닿을 셔츠가 이만큼 하얄 일도, 구겨진 흔적 하나 없는 바지를 입을 일도 없었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닿은 아이에게 평화롭기 그지없는 저택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근래들어 세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굶주린 사람이 어떤 저택에 들어가면 귀족이 되어 나온다는 식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동화속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는 곧 잊혀졌지만 저택은 건재했고, 저택의 주인도 여전히 그 저택에서 살았다. 나이가 넘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말고는 흠잡을 곳 없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큰 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름 높은 이였다.

"오셨습니까."

"음."

 그는 외투를 건네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열흘 만의 귀환이었지만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말끔해 보였다.

"다리오 경은?"

"서재에 계십니다."

 다리오 드렉슬러가 공식적으로 다리오 가에서 제명된 지 오래였지만, 그는 저택 안에서 여전히 귀족으로 대접 받았다. 당사자는 그럴 때 마다 질색하며 칭호를 거두라 일렀지만 저택의 주인이 거듭 일러두었으므로 사용인들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준비가 끝나면 부르게."

 그는 계단을 오르며 지난 밤 눈꺼풀 너머에서 본 모습을 떠올렸다. 눈에, 저를 안고 다가와 안기는 모습이 선했다. 그는 업무로 저택을 비운 기간 내내 제 것이되 제 것이 아닌 그에게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제가 보는 그의 모습이 어떤 형태였는지 그 끝을 정해두지 않은 채로 전부 본 셈이다. 그는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 자신의 밑바닥을 볼 줄은 몰랐기 때문에, 호텔 침대맡에서 일출을 볼 때 마다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다녀오기 전 처럼, 계단을 올라 몸을 틀어 거닐면 저쪽 끝 방에 있을 당신을 안다. 업무를 처리하고 있거나,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등을 맞댄 시간을 믿기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그의 작품과 같아 그가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알베르토?"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마자 그의 모습을 보고 마는 것은.

"내 사랑."

 감히 운명을 입에 담았다. 수십 가지의 생각이 씻겨내려가고 자신이 그의 앞에 서 있다는 것 하나만 남았다. 보름 만에 다시 본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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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