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2018. 4. 15. 02:05



 비능력자의 시야로 바라본 그는 전쟁터에서 말이 되지 않는 힘을 가졌으면서도 창술을 고집하는 특이한 군인이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 대 사람으로 그를 바라본다면 그는 그들과 같은 20세기를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갑주를 갖추고 공성전에 나가지만 클랜 매니저로써의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제복을 입을 줄도 알았고, 군인으로써 필요하다면 가문 전속이 아닌 양장점에서도 옷을 맞출 수도 있다. 즉, 포트레너드 측에서 공성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능력자들에게 보낸 한 벌의 정장도 예의상 받아두고 관리는 맡겨도 존재를 잊을 물건이 아닌 그의 옷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의뢰로 시작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그 옷은 이미 한 벌의 옷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어렵게 수소문한 장인들은 시장의 요청에 따라 문양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을 기계의 개입 없이 진행해 옷을 완성했다. 시작부터 단 한 순간도 평범했던 적이 없던 그 검은 정장은 능력자에게 지위를 보장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인 물건이 되어 능력자들에게 전달된 뒤, 포트레너드의 친 능력자적인 행보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었고, 능력자들을 비능력자들의 편견으로부터 보호하다가, 결국엔 별도의 브랜드가 되며 디자인적인 면까지 인정 받았다.

 그렇지만 같은 옷을 받고 입어도 그러한 류의 상징성을 권위와 명예, 정의를 체득하고 다뤄온 사람 만큼 잘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능력자가 전부 귀족이나 왕족이라면 모를까 그런 경우는 오히려 드물고, 신분이 높다고 해서 다 명예를 중시하는 인간인 것도 아닌 데다가, 옷이 잘 어울리기까지 해야 하니……. 그런 면에서 따져 본다면 시착했을 때 시장과 짜고 치기라도 한 듯 몸에 잘 들어맞는 옷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이 방면에선 아주 귀한 사람이었다.

 그 점은 회사도 잘 알고 있었다. 헬리오스는 이익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일단 시도하고 보는 집단이었고, 그는 회사측의 헬리오스 소개 책자에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그의 모습을 싣겠다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본 소속이 아틀라티코 드라군이므로 헬리오스를 상징할 수는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 하며 본사 직원을 돌려 보냈으므로, 헬리오스 측에서는 그것만큼 아쉬운 결말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크루그먼은 그 헤프닝을 드렉슬러에게 털어 놓았고, 그는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잘생기긴 했지.

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