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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2015. 5. 9. 16:43

아레님이 의뢰해주신 커미션입니다.

* 로라드렉(로라스x드렉슬러 // cyphers).

* 에버님의 용사마왕(https://twitter.com/chiznoguri/status/581138750043885568)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3차창작(https://twitter.com/Faithpear_cp/status/581661903669194753) 관련 이야기

※ 본 커미션은 원작자인 에버님의 허락하에 진행됩니다. 

원작자의 의사 철회시 의뢰비는 전액 환불해드리고, 해당 글은 삭제 처리됩니다.

* 중편 커미션 (5/5), 각 3500자(현재 편 : 7000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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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라스는 처음 길을 나섰을 때 처럼 수행원 한 명 없이 길을 나섰다. 다른 이들처럼 요령을 부릴 방법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그는 마침 기존 세력에게 혜성처럼 나타난 위협이던 참이다. 그는 끈기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떠날 수 없다고 느낀 순간, 그는 저를 기른 세계를 등지고 그가 있을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처음 마계의 땅을 밟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가 향하는 곳 마다 이론서가 아니면 볼 일이 없었을 존재들이 튀어나와 그에게 날을 세웠다. 존재라 함은 그가 두 발로 딛고 서 있던 마계의 땅까지 포함한 이야기로, 요동치는 땅에서 균형을 잡느라 한동안 고생했던 것은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의 입장이 마왕의 손님으로 바뀐 그 순간을 기억했다. 그때부터 그의 성 안에서 용사란 마왕을 물리치고자 하는 이가 아니라 인간 손님의 별칭 같은 것이 되었다. 

 그대로였다. 바람은 그를 앞으로 떠밀었다. 땅은 요동쳤으나 그의 여정에 방해가 되는 곳에 한해서 장난을 쳤다. 그는 격려를 받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단히 무장했음에도 조금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 그 덕분이었다.

 로라스는 하루라도 빨리 마왕을 만나고 싶었다. 그의 앞에서 보란듯이 정착을 선언할 작정이었다. 

 방 하나 내 주게.

 그는 마계에서 통용되는 대가가 인간의 것과는 다른 성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수중에 충분한 방값을 들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파편때문에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면 그는 낄낄대며 테이블을 쳐 댈 것이었다. 거기에 그에게는 마왕과, 마왕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알이 있었다. 미래였다함께 살아갈 몇십 년이 거기에 있었다.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알베르토 로라스에 대해 전부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것을,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성에 당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로라스는 성문 주변을 뱅뱅 돌았다. 성은 그가 돌아올 날을 어림하며 회고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상했다.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계의 것들이야 본디 인간의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변화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단 하나도 바뀌지 않은 이 성은 어딘가에 거짓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게되는 순간, 성은 진실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는 문에 대고 담담히 말했다. 문지기는 없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들여보내는 문이 있었을 뿐이다.

"열어주게."

 문은 쉬이 열렸다. 


 로라스는 극진히 대접받았다. 정말로 다시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제 세계로 돌아가기 전, 마왕에게 직접 이야기 했던 것임에도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평소 마왕이 제 말의 무게를 그정도로 가벼이 했던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어쨌거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하는 로라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사용인들은 그를 이끌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궁인듯 미궁인 그곳은 한동안 기거했던 그조차도 다시금 알 수 없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또 언제 적응할지 조금 막막해진 그는 잠자코 다른 이들의 뒤를 따랐다. 성의 맨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혼자 헤메는 것 보다야 그 편이 좋았다. 곧 익숙한 복도가 보였다.

 복도 끝에는 그의 방이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신이 생활하던 공간이 있었다. 그를 보기위해 온 것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의 방에 꽂혔다. 발걸음을 옮길까 하였으나 이 시간이라면 방의 주인은 공방에 있을 것이었으므로, 그는 그 옆 방의 문을 열었다.

 거기엔 아이가 있었다.

 둘의 아이임은 자명했다. 그가 쓰던 방은 축원이 신기루처럼 남아 있었다. 축복이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다만 그에게 내려진 축복은 마계의 존재들을 처분하라며 내려진 것인 터라, 뒤집어 말하면 성에 기거하는 이들에게는 목숨을 위협하는 저주였다. 그것을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는 그가 알기로 한 가지 뿐이었다. 인간의 피가 섞여 있을 것.

 그러나 그런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아이가 제 식솔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침대 근처의 선반에 놓여 있던 물건들 때문이다. 그들은 왕이 당신에게 건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제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그것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순전 로라스의 몫이 되었다.

 종이 쪼가리 몇 장, 귀걸이 한 쌍이 있었다. 그는 우선 쪽지를 집었다. 하나같이 낱장이었고 그마저도 몇 장 되지 않았다만, 거기에서 마왕은 땅에는 별, 하늘에는 달, 달이 별에게 꽂아내릴 무수한 흔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절대로 보여주지 않겠다며 끝까지 버티던 것들의 정체를 알고 나자 로라스는 어서 그와 이 메모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올 줄 모르고 있었으니 태연하게 이 모든 것을 넘겼을테지. 손끝이 간질거렸다.

 그리고 귀걸이 옆에 평소 휘갈겨 쓰던 것과는 또 다른 작은 메모장 하나가 따로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을지 궁금해하며 펼쳐든 메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정 가운데 페이지에 무언가 써 있었다.

 ∞

 영원을 노래하는 것은 거기에 영원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일 년이 채 안 되어 인간 아이들의 기준으로 예닐곱 살 쯤은 되어보일 정도로 자랐다. 아이는 현명했으며 또한 강력했다. 그 깊이가 마계에서도 유례가 없었다는 말을 듣고 있다보면 그는 아이에게서 자신을 배재하고 철저히 마계의 시점에서 볼 줄 아는 존재로 자라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를 떠날 수 없었다.

"있어요."

 아이는 귀걸이를 살살 쓸었다.

"여기."

 로라스는 생명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가 섣부르게 생명을 다루게 둘 자가 아니었다그것이 그를 성 안에서 살게 했다. 아이는 아비인 그가 부탁했다면, 아니 막지 않았다면 기꺼이 마왕을─이제는 전 마왕이겠으나─그네들의 곁에 데려왔을 것이다. 그와 마왕은 그런 일이 가능한 존재를 낳았던 것이다. 아이가 힘을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비인 로라스가 그것을 엄하게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어도 쓰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고려할 만한 이야기였으며 옳은 부분이 존재했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 부모중 한쪽을 잃은 아이가 곧바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독한 것이었다. 그것은 현명함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는 기꺼이 아이의 곁에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어둠이 완연히 내려앉은 날 창가를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럴때면 마왕이 자신에게 다른 방도 아닌 이 방을 내어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별이 잘 보이는 그곳은 아이에게 아름다움을 가르쳤다. 영원을 궁금해하는 자신에게는 그 나름의 해답이 되어주었다. 별을 사랑하는 이도 그의 머리속에서는 한결같았기에 그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떠올리는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그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방을 내어준 이는 그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둘은 별이 보이는 창가 너머로 오지 못할 이를 상상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거기엔 셋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으나 로라스가 마왕에게 받은것 중에는 그의 공방도 있었다. 그에게 받은 것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이야기 하곤 했으나 그곳만큼은 내어줄 수 없었다. 그 공방에는 단 세 존재만 들어갈 수 있었다. 공방의 주인이었으나 이젠 볼 수 없는 이, 공방의 새 주인이 된 이, 둘 사이에서 난 아이.

 아이가 그 공간을 좋아하느냐 묻는 이들이 있었다. 로라스는 익숙해 한다고 대답했다. 저를 품고 낳았던 존재의 기운과 흔적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공간이었다. 공방은 그와 함께 오기 전 까지는 단 한 번도 들러본 적 없었을 아이에게도 그리운 곳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끌어냈다.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선택한 로라스는 평소 제 아이는 공간에 구애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공방에서 만큼은 달랐다.

 따지고보면 본래 로라스는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신중하게 듣고 판단하는 것을 더 자연스러워 했다. 마왕과의 대화는 어디까지나 예외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왕은 제 곁에 없었으므로, 그는 되새겼었던 자신의 과거를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아이는 부모를 닮았는지 아비의 이야기를 좋아라 했다.

 좋은 청중이 되겠군, 그 처럼. 

 그는 눈을 감았다. 또다시 그였다. 아이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결핍과 그의 그리움은 같은 것을 가리켰다.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마왕의 존재를 갈구했다. 그리움보다 깊은 그것은 이윽고 염원이, 갈망이 되었다. 


 두 존재 분의 갈망에 념이 닿았다. 세 염원은 힘 아래 결합되었다.


 그는 길다면 길었을 여정에서 깨어났다. 아이의 손에 있던 귀걸이의 색이 바뀌어 있었다. 다리오나이트는 한 번 반응하면 변색이 일어났는데, 이 부분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기엔 성력과 마기가 혼재되어 있는, 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서 있었다.

"당신은……."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 되지 않는 존재이기는 했다.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온갖 감정을 제 앞의 존재에게 쏟아냈다. 거기엔 공포까지 있었다. 그 공포는 생명에 관한 근본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배반에 관한 두려움에 가까웠다. 나는 아버지를 어긴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퍽 합리적이었다. 마왕은 거기에 답을 제시했다.

"두 존재 분의 염원으로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연구를 다 끝마치기 전이었으니까."

"그러면요?"

 그는 두말않고 제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제 무기에 제가 얻어맞은 오우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좋다고 웃어대다가 누가 들을새라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그 놈이 한 번도 안 해준 이야기였거든."

 궁금해 죽겠더라고. 그는 제 뿔을 벅벅 긁었다.

"그래서 나도 답례를 좀 해볼까 하는데."

"답례요?"

"해 볼래?"

 그의 눈이 위험하게 번득였다.


 어느날부턴가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배우기라도 한 것 처럼 잘 웃고 잘 울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시작하는 것이니 분명한 청신호였다. 로라스는 아이의 변화를 기뻐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여전히 늪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는 그를 평생동안 짊어지고 갈 작정이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의 세상에 늪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랬다. 

 로라스는 착잡한 심정을 추스릴때면 홀로 그의 공방에 들렀다. 그럴때면 그는 마왕이 늘상 앉아 있던 자리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정한 적은 없었으나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그는 이 공방에서 의지를 따르는 금속을 다루던 마왕을 생각했다. 그의 이름이 붙은 광물 답게 자신의 의지 정도로는 다리오나이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멋대로인 것이 꼭 그와 같았다.

 아마 오늘도 그럴 것이었다. 로라스는 드워프들이 이 공방에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마왕은 제 공방에 숨어 지냈다. 물론, 한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느라 공방에 붙어 있는 날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은 알아도 되었으나 용사에게는 숨겨야 했으므로, 그 시기는 아이의 도움을 받았다. 그에게 알려야 할까 고민할 때 마다, 본디 마왕이란 용사들에게 그런 존재였음을 생각하며 끈기있게 참아내고 있었다. 가끔씩은 아이에게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가르쳤는데 아이는 무엇을 가르쳐도 순식간에 제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해서 그날의 마왕은 어땠는가 하면, 풀무질을 한 번 가르쳐볼까 싶어 아이에게 공방에 오라고 미리 언질을 주고는 조금 먼저 제 공방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가 도착했을때 쯤엔 이미 누군가가 먼저 와있는지 평소보다 작업실이 밝았다. 그는 아이겠거니 싶어 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아들! 먼저 와 있었냐!"

 아이치곤 덩치가 컸다. 침입자? 마왕은 자신의 창을 불러들어야 하나 고민했으나, 곧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

"?"

 지금 필요한 것은 창이 아닌 효율적인 도주경로였다. 그는 이 공방이 자신의 것이라는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또 몰랐다.


"으, 으아아아아!"

 괴상한 비명소리가 공방에 울려퍼졌다. 그는 실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

 그건 로라스도 마찬가지였다. 차이라면 그는 이를 악 문 채 달리고 있었다. 거기에 어디서 찾아냈는지 한때 마왕이 대충 만들어 보고는 공방 한 구석에 던져뒀던 창용 창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거리차이가 전혀 벌어지지 않자 슬슬 마왕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기록에서 마왕은 보통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인 것을 감안하면, 로라스도 이제 훌륭한 마왕감이 된 셈이다.

"저리가!"

 뒤를 힐끔 돌아보자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다. 그는 배로 당황했다.

"오지말라고!"

 로라스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그, 그, 그래, 거기 딱 그렇게 가만히……."

 그러나 그의 손에 있던 창까지 멈추지는 않았다. 창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마왕의 발 뒤꿈치에 명중했다. 마왕은 악 소리와 함께 그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로라스는 다시금 발걸음을 뗐다.


+


"젠장!"

 그는 씩씩대며 이불을 끌어모았다. 그날도 그는 속이 쓰렸고 뿔은 내려앉아 있었다. 로라스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실은 한 두번도 아니고, 그의 상태가 괜찮아질때 쯤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방을 점거해 일을 쳤다. 예외는 없다시피 했으므로 마왕은 정말 죽을맛이었다. 처음처럼 창을 날리면 피할 수라도 있었겠지만, 불안감을 기반으로 한 행동은 피할 수도 없었다. 요컨대 자기 업보인 것이다.

"이제 말 해 줄때도 되었지, 자네."

 로라스는 이불 째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와중에 뿔이 조금 쓸렸다. 그는 화들짝 놀라 파득댔다.

"뭘!"

"이름 말일세. 자네 이름."

"알잖아."

 그는 대놓고 툴툴댔다. 더 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몰라도 되는거잖아. 알아야지. 언제까지 자네를 마왕이라 칭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드렉슬러. 다리오 드렉슬러? 그래, 이 젠장맞을 용사 자식아. 알베르토 로라스일세.

"알베르토…로라스……."

 슬금슬금 의식이 감겨들었다. 로라스는 이마를 부볐다.

 "잘 자게, 드렉슬러."

 이번에야말로 그들은 서로의 곁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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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2015. 5. 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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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2015. 5. 1. 01:17

* 아레님이 의뢰해주신 커미션입니다.

* 로라드렉(로라스x드렉슬러 // cyphers).

* 에버님의 용사마왕(https://twitter.com/chiznoguri/status/581138750043885568)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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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 커미션 (4/5), 각 3500자(현재 편 : 4011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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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맺을 수는 없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였다. 스쳐지나갈 인연, 묻어두고 현재에 충실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를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존재였기에 더욱 더 알고 싶었다. 동족들 사이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이를 찾지 못했던 그들이다. 하여,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란 그리도 소중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로라스는 매일 아침 몸을 단련했고 마왕은 공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모종의 문제로 두 존재가 하룻밤을 꼬박 지샌 뒤에도 여전히 그랬다. 아침 식사는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고 서로의 방은 여전히 자신이 머무는 방 바로 옆에 있었다.

"언제 왔냐?"

 기척을 알아챈 마왕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날따라 로라스는 그의 옆에 걸터앉아 침묵을 지켰다. 그는 로라스를 흘끗 보곤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한동안 공방에서는 철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그러다 한 순간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그는─

"……."

 의자라기도 민망한 토막에 쭈그려 앉아 졸고 있는 로라스를 볼 수 있었다. 투구에 가려져 눈매는 보이지는 않았으나 기운을 가늠하곤 금새 알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평온한, 그러나 자극이 주어지면 바로 정신이 돌아올. 마왕은 일찍이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방을 주고 몸을 섞기까지 했지만 그때마저도 그가 먼저 나가떨어져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몰랐던 모습이다.

 이곳은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마음놓고 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돌아가고자 하네."

 해서 그가 제 세계로 돌아가겠노라 선언했을 때, 마왕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

"자네는 다리우스가 아니지 않은가. 자네 말이 맞다면 당분간 사악한 마왕은 볼 일이 없을 테지."

"그 말을 믿는다고?"

"그 말만 그렇겠는가."

 그는 성창을 한 번 휘두르곤 이어 대답했다.

"자네의 말에 거짓이 섞여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아."

 인간의 수명은 짧았다. 다시 돌아올 결심을 할때쯤이면 죽음을 앞둔 시기일 것이다. 마왕은 나이를 먹어갈 그의 모습은 영영 못 볼거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만 영영 되뇌이라는건 끔찍한 저주였다. 그는 용사였으니, 마왕인 자신에게 내리는 저주 하나 쯤이야 못 받아줄 것도 없다.

 그렇다면 마왕인 자신도 용사에게 저주 하나 쯤 내려야 공평할 것이다.

"가져가라."

 로라스는 제게 던져진 납 상자를 가볍게 잡아챘다. 문양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말동무 해준 값인 셈 쳐. 변환은 필요하겠지만 인간 사제들도 그정도는 해."

 그는 그렇게만 말했다. 마계의 문자를 아는 인간은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게 알 물건이었다. 로라스는 상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소중히 갈무리했다.

"돌아오겠네."

 인간의 약속이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마왕은 저를 찾아온 용사가 인간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로라스는 제 터전으로 돌아오자마자 모든 일을 다 제치고 자신이 고난을 견뎌내기 시작했던 성당으로 향했다. 그는 본디 귀족이었기에, 성기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성당은 나라에서 가장 명성깊은 곳 중 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자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게 될지 한 번 가늠해보고, 그들의 표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한 번 보았다.

 사제들은 갑작스런 방문에도 그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로라스는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며 자신이 받아온 물건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알지 못하는 것일세. 조언을 얻고자 왔네."

 그들은 상자 겉면에 새겨진 문양을 보자마자 한 번, 조심스레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문장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한 명은 왕을, 한 명은 대사제를 향해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머지 사제들은 제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형제여. 큰 일을 하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당분간 바쁘실 것 같군요."

 로라스는 사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일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 하나만 알았다.


 돌아온 뒤 첫째 달, 그는 대사제의 축복을 받았다. 나라 안 모든 사제들이 모여 있었다.

 돌아온 뒤 둘째 달, 그는 왕의 부름을 받았다. 무한한 영광과 권세를 보장받았다.

 돌아온 뒤 셋째 달, 그는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예복을 입고 성 주변을 돌았다.

 돌아온 뒤 넷째 달, 그는 기사단장을 시작으로 몇 개의 작위를 겸했다.


 그는 권세에 휘둘리지 않았다. 명예보다 신념이 우선했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네 달 간,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모든것은 마왕이 던져준 상자에서 비롯되었다. 알아야 했다. 모른척 넘겼으나 이제는 그래야 했다. 

 얼마 뒤, 그는 결국 마왕이 제게 넘긴 물건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떻게 가져오신건가요?"

 상자 표면에 깃들어 있던 문양은 마왕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문양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것은 현 마왕이 아닌, 다리우스의 사념체가 깃든 갑옷 조각이었다.

"다른 마왕이 즉위해 있었네. 그가 주더군."

 그리고 마왕이 무슨 생각으로 그 물건을 제게 쥐여 보냈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과연! 다른 마왕이라고 해도 경의 무예를 본다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연회가 끝나고 로라스는 정처없이 성을 걸었다. 모든것이 거추장스러웠다. 자신이 이 세계에 돌아온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제가 태어난 세계의 모든 것을 정리하기 위해 돌아왔기 때문이다. 

 두 존재가 밤새 고민했던 그날 밤, 로라스는 제 생각을 끝맺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미래는 결정했었다. 자신의 평생과 그의 평생이 동등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알면서도, 제 일생을 바쳐 그의 한 순간이라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억울하지도 않냐며 자신을 타박할지도 몰랐다. 그에게 그런 타박은 익숙했다. 성기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다.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을 그에게 헌납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되새겨야 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되살린 기억까지 전부 그의 곁에 두기 위해 한 번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돌아왔고, 돌아갈 일만 남아있던 것이었는데.

 그는, 마왕은 저를 영웅의 자리에 올려놓을 작정이었다. 돌아오겠다는 말은 들은 척도 안 한 것 처럼.


 변한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다스렸지만 그대로일 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옹립했던 존재들을 불러모았다. 하나같이 걸출한 자들이었다. 그만큼 현명했다. 자신들의 대립이 마계에 불러올 파장을 알고 있었던 그들은 자신을 내세워 갈등 상황을 최대한 쳐내고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존재들 만큼은 그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자신을 보았다. 그는 그네들이 어떤 목적도 없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정도냐?"

 마왕은 다시금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초기에는 제 기운에 고통을 스며들게 하는 정도로도 견딜 수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치를 넘겨 나머지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되었다. 정말이지 심상치 않은 놈이었다.

"너희가 그럴 정도라면 대단한 놈이 되겠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낮, 해가 떠 있었다.

"성력을 가진 인간이 머물렀던 방이 있다."

"옆 방말인가?"

"그 방. 이 놈한테 줘."

"념은?"

"옆에."

 그는 상자를 가리켰다. 곁에 있던 자 하나가 상자를 열자 한 쌍의 귀고리가 보였다. 얇은 창 모양이었다.

"다리오나이트는 아직이다. 효과는 안정적이지만 효율이 안 나와. 온 힘을 부어 활성화 시키느니 시간 좀 더 들이는게 낫겠지. 드워프들의 공방에 모든 자료를 넘겨놨다. 시간 붓고 지켜주기만 하면 돼."


 그는 눈을 감았다. 매일같이 제가 여기 있다며 저를 생각해달라는 뱃속 존재에게 아파죽겠다고 제 고충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공방에서 지내는건 여전했지만 때때로 하늘을 보여주었다. 하늘 만큼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다 해주며, 볼 수 있는 광경은 다 보여주고 싶었다.

 아주 가끔은 그의 이야기를 했다. 아마 볼 수 없을 테니 궁금하다면 제 념을 건드리면 될 것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저를 이을 존재가 그것을 언제 알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부가 되어줄 이들은 명실상부 마계의 최강자들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번 더, 별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별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그 곁으로 갈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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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2015. 4. 30.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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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2015. 4. 26. 21:09

* 아레님이 의뢰해주신 커미션입니다.

* 로라드렉(로라스x드렉슬러 // cyphers).

* 에버님의 용사마왕(https://twitter.com/chiznoguri/status/581138750043885568)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3차창작(https://twitter.com/Faithpear_cp/status/581661903669194753) 관련 이야기

※ 본 커미션은 원작자인 에버님의 허락하에 진행됩니다. 

원작자의 의사 철회시 의뢰비는 전액 환불해드리고, 해당 글은 삭제 처리됩니다.

* 중편 커미션 (3/5), 각 3500자(현재 편 : 4444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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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라스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 성기사가 된 뒤로 거의 겪은 바 없는 일이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는, 평소와 다르게 이불이 무언가에 걸려 걸리적거리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가 누워 있었다. 로라스는 마왕이 제 곁에서 잠들어 있는 이유를 잠시 고민하다가, 간밤에 있던 일을 기억해내곤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후."

 그는 조금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그는 제 옆에 잠든 이를 어떻게 대할지 결정해야 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런 일을 거치고 나니 볼 낯이 서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자신의 아이…… 아니, 알을 가졌을 터다. 그렇다고 아내로 맞자니 그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잠에서 깨면 이야기 해야할까 하던 도중, 곁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으."

"……."

 로라스는 흠칫 놀라며 그를 살폈다. 그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지만 악몽이라도 꾸는지 식은땀이 흐르는 듯 하여, 그는 무심코 소매로 닦아주려고 손을 들었다가 텅 빈 팔목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이런."

 그는 답지않게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잠에서 깬게 확실한지 자기 자신도 실감이 잘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사 서약을 마친 뒤 곧장 마계로 넘어온 그는 한동안 홀로 잠들어 왔고, 마왕성에 머물게 된 이후에는 방 하나를 홀로 써왔으니다른 이가 잠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오래된 일이라 현실성이 없었던걸지도 모른다.

 그는 이불을 좀 더 끌어올려 이마를 툭툭 두드려준 뒤 평소처럼 몸을 단련하기 위해 먼저 방을 나섰다. 마왕은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밍기적대며 움직였으므로, 그가 다녀와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


"윽."

 그가 채비를 마치고 나가기 무섭게 마왕은 눈을 찡그렸다. 마왕 역시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왕일지언정 실권은 다른 이들이 쥐고 있고, 그에 따라 책임 소재도 그들에게 넘어가 있었으므로 그는 마왕이라는 직함을 달아야만 할 수 있는 일들만 처리하면 그 뒤로는 온전히 자기 재량으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다시말해 늦잠을 자건 밤을 새건 자기 할 일만 하면 그만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제 손님처럼 이른 시간부터 눈을 뜨고 있을 필요는 없었고, 간혹 이른 시간에 깨어있는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변덕이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고통에 못이겨 잠에서 깨어났다. 알의 상태일 때부터 저를 밴 존재의 힘을 누를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극소수의 사례가 입에서 입으로, 혹은 언어로 기록되어 내려오는 전설일 뿐이다. 문득 그는 자신이 그 극소수의 사례모음집에 몇 줄 더 추가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으나 아니겠지, 하며 이불을 재차 둘렀다. 그러나 고통은 여전해서 그는 결국 침대에 누운 채 이리저리 뒹굴며 고통을 견디기 시작했다.

 그는 커다란 이불을 제 몸에 꽝꽝 두르고 하릴없이 공간을 쓸었다. 어스름의 틈새에 용사가 남아 있었다. 그는 마왕이 되고난 뒤 수많은 존재와 스쳤으나 마왕이 아닌 그를 통찰해내는 존재는 일찍이 만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인간이 자신에게 그런 존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보내야 그와같은 이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미래란 늘 불명확했다.

 그는 제 배를 쑤셔대는 기운을 적당히 누르며 창 너머를 바라봤다. 하늘이 가까웠다. 용사의 방이 하늘을 사랑하는 마왕의 방 바로 옆에 있었던 까닭이다. 그는 세상이 깨어날 때 까지 그렇게 누워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제 뱃속에서 고통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지 잦아들기는 했다. 마침내 고통이 스며들어 기운이 안정될 무렵 그는 생각했다. 이 방을 주어야겠다. 내가 사랑하는 밤하늘을 사랑하도록. 


 로라스가 제 방에 다시 당도했을 때 그는 제 침대에서 양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잠든 마왕을 볼 수 있었다. 표정이 한껏 풀어진 것이 이번에는 꿈 없이 편안히 잠든 모양새다. 다만 이불을 둘둘 말고 자는 것이 신경쓰여 그는 넌지시 마왕을 불렀다.

"마왕."

 그는 미동 한 번 없이 잘만 잤다.

"마왕."

 로라스는 다시금 그를 불러 깨웠다. 마왕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영면에 든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덜컥 불안해진 그는 바싹 다가가 말했다.

"해가 중천일세."

 마왕 고치가 반 바퀴 굴렀다

"……."

 이래서야 그에게 애늙은이 타령하던 마왕은 헛 큰 셈이다. 로라스는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그의 눈 앞에서 손을 저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는지, 로라스는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인간은 이른 시기에 결혼을 해. 여기 기준으로는 한참 뛰어놀 나이대라고 하더군."

 마왕은 그가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낼때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그는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게 당연하다며 로라스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들었다. 특유의 호기심에 기인한 것일 테다.

"지위에 따라 다르지만 빠르면 열 다섯에도 가정을 꾸리지. 그러면 갓 성인이 된 두 사람─"

"꼴랑 십 오년 살고 성인이냐."

 그래도 이야기는 듣는 이가 있어야 할 맛이 나는 법이다.

"동감하네. 너무 여려."

"너도 몇십 년 밖에 더 안 살았잖아."

"인간의 시점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백을 곱해보게."

"음."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배를 살살 쓸던 그가 말했다.

"그래도 어린데."

"내 또래 쯤이면 아이가 두셋 정도는 있네. 아이들도 교육을 받을 시점이지."

"교육?"

 마왕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로라스는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일세."


 그 날 이후 마왕은 제 배를 내려다 볼 때 마다 착잡한 심경을 숨길 수 없었다. 그에게 나이 삼십이란 안전한 거처 안에서 막 기운을 느끼기 시작하며 모든 존재에게 귀여움 받을 나이였다. 백 살도 안 된 존재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용사의 말은 제가 일종의 학대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들렸다.

"아무것도 모를 나이부터 그렇게 몰아세워야 하나?"

 그는 얼마 전 제 뒤를 뚫은 인간도 그 언저리 쯤 나이였다는 것은 새까맣게 잊은 양 굴었다.

"마왕."

"알아. 백을 곱하면 삼천이지."

 마왕은 답답하다는듯 고개를 붕붕 저었다. 곧이어 제 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순혈 인간일때잖아. 내 뱃속에 있는 건 순혈 인간이 아니라고."

 로라스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사악한 마왕, 다리우스의 기록을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심각했다. 자신의 아이가 인간이 아니라니? 그러나 맞았다. 자신과 정을 통한 이는 인간이 아니라 마계의 존재였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어찌 이렇게 충격적인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외양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기운이 섞여 들어간 아이가 인간일 리가 없었다. 그래, 아이도 아니었다. 인간의 새끼가 아닌 다른 존재였다.

"……."

"용사?"

"몸좀 풀고오겠네."

 로라스는 성을 나섰다. 마왕은 그를 잡을까 하다가 곧 그만두었다. 그 대신 공방으로 열어둔 포탈로 향했다. 한 번 쯤은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분명 그날, 그는 자신이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괜찮다고도 했다. 그랬기에 믿었는데.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어렸다. 그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가 생각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생각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는 실감이 잘 되지 않았던건가. 아니면 막상 현실이 되니 질겁한 것인가?

"뭐야."

 마왕은 천천히 걸었다. 어느쪽이건 결론은 같았다.

"맞잖아. 어린 거."


 로라스는 성곽 주변에서 정처없이 빙빙 돌았다. 아이가 순혈 인간이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수명.

 분명 마왕은 삼십 년을 산 존재에게 아무것도 모를 나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자신의 아이가 될 존재가 마왕과 같은 종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같이 온전한 인간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알에서 깨어난 그 존재는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아비인 자신과 생이별을 하는 셈이 된다. 그는 마왕에게 자신의 알을 낳으라는 이야기를 할 때 까지만 해도 두 존재 자체의 문제에 집중했던 탓에 둘 사이에서 태어날 존재의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둘의 종족이 다르다는 문제부터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같은 의미로, 자신의 짧은 수명 때문에 못해도 몇 천년 간 자신이 가지게 한 존재를 홀로 돌보아야 할 마왕의 처지조차 헤아리지 못했다. 인간인 자신의 입장에서 그의 개념과 엇비슷한 인식을 맞추기 위해 백을 곱하고 나누는 행위는 편리했지만 정확하지 않았다. 인간의 평생은 몇 십년이었으나 그의 평생은 얼마나 긴 시간일지 헤아려본 그는 아득함에 할 말을 잃었다. 금방 털고 일어난다고 해도 존재가 자라날 때 까지 적어도 몇 천년은 제 파편과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잘 견뎌낼 것이다. 하지만.

"못 할 짓을 했군."

 그의 고뇌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불충분했다. 그에게는 오로지 그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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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
2015. 4. 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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