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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라드렉(로라스x드렉슬러 // cyphers).
* 에버님의 용사마왕(https://twitter.com/chiznoguri/status/581138750043885568)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3차창작(https://twitter.com/Faithpear_cp/status/581661903669194753) 관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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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스는 처음 길을 나섰을 때 처럼 수행원 한 명 없이 길을 나섰다. 다른 이들처럼 요령을 부릴 방법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그는 마침 기존 세력에게 혜성처럼 나타난 위협이던 참이다. 그는 끈기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떠날 수 없다고 느낀 순간, 그는 저를 기른 세계를 등지고 그가 있을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처음 마계의 땅을 밟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가 향하는 곳 마다 이론서가 아니면 볼 일이 없었을 존재들이 튀어나와 그에게 날을 세웠다. 존재라 함은 그가 두 발로 딛고 서 있던 마계의 땅까지 포함한 이야기로, 요동치는 땅에서 균형을 잡느라 한동안 고생했던 것은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의 입장이 마왕의 손님으로 바뀐 그 순간을 기억했다. 그때부터 그의 성 안에서 용사란 마왕을 물리치고자 하는 이가 아니라 인간 손님의 별칭 같은 것이 되었다.
그대로였다. 바람은 그를 앞으로 떠밀었다. 땅은 요동쳤으나 그의 여정에 방해가 되는 곳에 한해서 장난을 쳤다. 그는 격려를 받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단히 무장했음에도 조금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 그 덕분이었다.
로라스는 하루라도 빨리 마왕을 만나고 싶었다. 그의 앞에서 보란듯이 정착을 선언할 작정이었다.
방 하나 내 주게.
그는 마계에서 통용되는 대가가 인간의 것과는 다른 성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수중에 충분한 방값을 들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파편때문에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면 그는 낄낄대며 테이블을 쳐 댈 것이었다. 거기에 그에게는 마왕과, 마왕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알이 있었다. 미래였다. 함께 살아갈 몇십 년이 거기에 있었다.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알베르토 로라스에 대해 전부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것을,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성에 당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로라스는 성문 주변을 뱅뱅 돌았다. 성은 그가 돌아올 날을 어림하며 회고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상했다.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계의 것들이야 본디 인간의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변화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단 하나도 바뀌지 않은 이 성은 어딘가에 거짓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게되는 순간, 성은 진실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는 문에 대고 담담히 말했다. 문지기는 없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들여보내는 문이 있었을 뿐이다.
"열어주게."
문은 쉬이 열렸다.
로라스는 극진히 대접받았다. 정말로 다시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제 세계로 돌아가기 전, 마왕에게 직접 이야기 했던 것임에도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평소 마왕이 제 말의 무게를 그정도로 가벼이 했던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어쨌거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하는 로라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사용인들은 그를 이끌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궁인듯 미궁인 그곳은 한동안 기거했던 그조차도 다시금 알 수 없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또 언제 적응할지 조금 막막해진 그는 잠자코 다른 이들의 뒤를 따랐다. 성의 맨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혼자 헤메는 것 보다야 그 편이 좋았다. 곧 익숙한 복도가 보였다.
복도 끝에는 그의 방이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신이 생활하던 공간이 있었다. 그를 보기위해 온 것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의 방에 꽂혔다. 발걸음을 옮길까 하였으나 이 시간이라면 방의 주인은 공방에 있을 것이었으므로, 그는 그 옆 방의 문을 열었다.
거기엔 아이가 있었다.
둘의 아이임은 자명했다. 그가 쓰던 방은 축원이 신기루처럼 남아 있었다. 축복이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다만 그에게 내려진 축복은 마계의 존재들을 처분하라며 내려진 것인 터라, 뒤집어 말하면 성에 기거하는 이들에게는 목숨을 위협하는 저주였다. 그것을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는 그가 알기로 한 가지 뿐이었다. 인간의 피가 섞여 있을 것.
그러나 그런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아이가 제 식솔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침대 근처의 선반에 놓여 있던 물건들 때문이다. 그들은 왕이 당신에게 건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제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그것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순전 로라스의 몫이 되었다.
종이 쪼가리 몇 장, 귀걸이 한 쌍이 있었다. 그는 우선 쪽지를 집었다. 하나같이 낱장이었고 그마저도 몇 장 되지 않았다만, 거기에서 마왕은 땅에는 별, 하늘에는 달, 달이 별에게 꽂아내릴 무수한 흔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절대로 보여주지 않겠다며 끝까지 버티던 것들의 정체를 알고 나자 로라스는 어서 그와 이 메모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올 줄 모르고 있었으니 태연하게 이 모든 것을 넘겼을테지. 손끝이 간질거렸다.
그리고 귀걸이 옆에 평소 휘갈겨 쓰던 것과는 또 다른 작은 메모장 하나가 따로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을지 궁금해하며 펼쳐든 메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정 가운데 페이지에 무언가 써 있었다.
∞
영원을 노래하는 것은 거기에 영원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일 년이 채 안 되어 인간 아이들의 기준으로 예닐곱 살 쯤은 되어보일 정도로 자랐다. 아이는 현명했으며 또한 강력했다. 그 깊이가 마계에서도 유례가 없었다는 말을 듣고 있다보면 그는 아이에게서 자신을 배재하고 철저히 마계의 시점에서 볼 줄 아는 존재로 자라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를 떠날 수 없었다.
"있어요."
아이는 귀걸이를 살살 쓸었다.
"여기."
로라스는 생명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가 섣부르게 생명을 다루게 둘 자가 아니었다. 그것이 그를 성 안에서 살게 했다. 아이는 아비인 그가 부탁했다면, 아니 막지 않았다면 기꺼이 마왕을─이제는 전 마왕이겠으나─그네들의 곁에 데려왔을 것이다. 그와 마왕은 그런 일이 가능한 존재를 낳았던 것이다. 아이가 힘을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비인 로라스가 그것을 엄하게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어도 쓰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고려할 만한 이야기였으며 옳은 부분이 존재했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 부모중 한쪽을 잃은 아이가 곧바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독한 것이었다. 그것은 현명함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는 기꺼이 아이의 곁에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어둠이 완연히 내려앉은 날 창가를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럴때면 마왕이 자신에게 다른 방도 아닌 이 방을 내어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별이 잘 보이는 그곳은 아이에게 아름다움을 가르쳤다. 영원을 궁금해하는 자신에게는 그 나름의 해답이 되어주었다. 별을 사랑하는 이도 그의 머리속에서는 한결같았기에 그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떠올리는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그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방을 내어준 이는 그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둘은 별이 보이는 창가 너머로 오지 못할 이를 상상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거기엔 셋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으나 로라스가 마왕에게 받은것 중에는 그의 공방도 있었다. 그에게 받은 것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이야기 하곤 했으나 그곳만큼은 내어줄 수 없었다. 그 공방에는 단 세 존재만 들어갈 수 있었다. 공방의 주인이었으나 이젠 볼 수 없는 이, 공방의 새 주인이 된 이, 둘 사이에서 난 아이.
아이가 그 공간을 좋아하느냐 묻는 이들이 있었다. 로라스는 익숙해 한다고 대답했다. 저를 품고 낳았던 존재의 기운과 흔적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공간이었다. 공방은 그와 함께 오기 전 까지는 단 한 번도 들러본 적 없었을 아이에게도 그리운 곳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끌어냈다.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선택한 로라스는 평소 제 아이는 공간에 구애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공방에서 만큼은 달랐다.
따지고보면 본래 로라스는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신중하게 듣고 판단하는 것을 더 자연스러워 했다. 마왕과의 대화는 어디까지나 예외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왕은 제 곁에 없었으므로, 그는 되새겼었던 자신의 과거를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아이는 부모를 닮았는지 아비의 이야기를 좋아라 했다.
좋은 청중이 되겠군, 그 처럼.
그는 눈을 감았다. 또다시 그였다. 아이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결핍과 그의 그리움은 같은 것을 가리켰다.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마왕의 존재를 갈구했다. 그리움보다 깊은 그것은 이윽고 염원이, 갈망이 되었다.
두 존재 분의 갈망에 념이 닿았다. 세 염원은 힘 아래 결합되었다.
그는 길다면 길었을 여정에서 깨어났다. 아이의 손에 있던 귀걸이의 색이 바뀌어 있었다. 다리오나이트는 한 번 반응하면 변색이 일어났는데, 이 부분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기엔 성력과 마기가 혼재되어 있는, 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서 있었다.
"당신은……."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 되지 않는 존재이기는 했다.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온갖 감정을 제 앞의 존재에게 쏟아냈다. 거기엔 공포까지 있었다. 그 공포는 생명에 관한 근본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배반에 관한 두려움에 가까웠다. 나는 아버지를 어긴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퍽 합리적이었다. 마왕은 거기에 답을 제시했다.
"두 존재 분의 염원으로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연구를 다 끝마치기 전이었으니까."
"그러면요?"
그는 두말않고 제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제 무기에 제가 얻어맞은 오우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좋다고 웃어대다가 누가 들을새라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그 놈이 한 번도 안 해준 이야기였거든."
궁금해 죽겠더라고. 그는 제 뿔을 벅벅 긁었다.
"그래서 나도 답례를 좀 해볼까 하는데."
"답례요?"
"해 볼래?"
그의 눈이 위험하게 번득였다.
어느날부턴가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배우기라도 한 것 처럼 잘 웃고 잘 울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시작하는 것이니 분명한 청신호였다. 로라스는 아이의 변화를 기뻐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여전히 늪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는 그를 평생동안 짊어지고 갈 작정이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의 세상에 늪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랬다.
로라스는 착잡한 심정을 추스릴때면 홀로 그의 공방에 들렀다. 그럴때면 그는 마왕이 늘상 앉아 있던 자리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정한 적은 없었으나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그는 이 공방에서 의지를 따르는 금속을 다루던 마왕을 생각했다. 그의 이름이 붙은 광물 답게 자신의 의지 정도로는 다리오나이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멋대로인 것이 꼭 그와 같았다.
아마 오늘도 그럴 것이었다. 로라스는 드워프들이 이 공방에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마왕은 제 공방에 숨어 지냈다. 물론, 한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느라 공방에 붙어 있는 날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은 알아도 되었으나 용사에게는 숨겨야 했으므로, 그 시기는 아이의 도움을 받았다. 그에게 알려야 할까 고민할 때 마다, 본디 마왕이란 용사들에게 그런 존재였음을 생각하며 끈기있게 참아내고 있었다. 가끔씩은 아이에게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가르쳤는데 아이는 무엇을 가르쳐도 순식간에 제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해서 그날의 마왕은 어땠는가 하면, 풀무질을 한 번 가르쳐볼까 싶어 아이에게 공방에 오라고 미리 언질을 주고는 조금 먼저 제 공방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가 도착했을때 쯤엔 이미 누군가가 먼저 와있는지 평소보다 작업실이 밝았다. 그는 아이겠거니 싶어 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아들! 먼저 와 있었냐!"
아이치곤 덩치가 컸다. 침입자? 마왕은 자신의 창을 불러들어야 하나 고민했으나, 곧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
"?"
지금 필요한 것은 창이 아닌 효율적인 도주경로였다. 그는 이 공방이 자신의 것이라는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또 몰랐다.
"으, 으아아아아!"
괴상한 비명소리가 공방에 울려퍼졌다. 그는 실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
그건 로라스도 마찬가지였다. 차이라면 그는 이를 악 문 채 달리고 있었다. 거기에 어디서 찾아냈는지 한때 마왕이 대충 만들어 보고는 공방 한 구석에 던져뒀던 투창용 창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거리차이가 전혀 벌어지지 않자 슬슬 마왕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기록에서 마왕은 보통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인 것을 감안하면, 로라스도 이제 훌륭한 마왕감이 된 셈이다.
"저리가!"
뒤를 힐끔 돌아보자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다. 그는 배로 당황했다.
"오지말라고!"
로라스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그, 그, 그래, 거기 딱 그렇게 가만히……."
그러나 그의 손에 있던 창까지 멈추지는 않았다. 창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마왕의 발 뒤꿈치에 명중했다. 마왕은 악 소리와 함께 그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로라스는 다시금 발걸음을 뗐다.
+
"젠장!"
그는 씩씩대며 이불을 끌어모았다. 그날도 그는 속이 쓰렸고 뿔은 내려앉아 있었다. 로라스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실은 한 두번도 아니고, 그의 상태가 괜찮아질때 쯤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방을 점거해 일을 쳤다. 예외는 없다시피 했으므로 마왕은 정말 죽을맛이었다. 처음처럼 창을 날리면 피할 수라도 있었겠지만, 불안감을 기반으로 한 행동은 피할 수도 없었다. 요컨대 자기 업보인 것이다.
"이제 말 해 줄때도 되었지, 자네."
로라스는 이불 째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와중에 뿔이 조금 쓸렸다. 그는 화들짝 놀라 파득댔다.
"뭘!"
"이름 말일세. 자네 이름."
"알잖아."
그는 대놓고 툴툴댔다. 더 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몰라도 되는거잖아. 알아야지. 언제까지 자네를 마왕이라 칭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드렉슬러. 다리오 드렉슬러? 그래, 이 젠장맞을 용사 자식아. 알베르토 로라스일세.
"알베르토…로라스……."
슬금슬금 의식이 감겨들었다. 로라스는 이마를 부볐다.
"잘 자게, 드렉슬러."
이번에야말로 그들은 서로의 곁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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