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2016. 9. 14. 03:04


 생명을 위협받던 때의 기억을 의도치 않게 떠올리는 건 적어도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함선은 행성을 구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갔으나 구성원에게 내재된 스트레스는 불쑥 떠올라 존재를 과시했다. 스타플릿은 이에 대해 전 크루들의 정신적인 면모를 살피고 추후 있을 탐사에 참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함선이 다시 건조되는 동안 정신과 상담을 지정된 횟수 이상 시행하도록 명령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 둔 셈이다. 어떤 생명체는 그정도면 충분히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 호에 그런 생명체만 타는 건 아닌 지라.

 그녀는 간혹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모든 크루가 에디슨에게 생명력을 갈취당하는 비틀린 순간을 떠올리며 손 끝을 떤다. 비단 그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함장만 해도 다른 함장과 공멸하는 순간을, 부함장은 제 심장이 꿰뚫려 죽는 순간을, CMO는 겨우겨우 살려놓은 이들과 함께 요크 타운에 불시착해 잿가루가 되는 순간을, 기관실장은 대기권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제 착오로 살피지 못한 단 한 곳을 떠올리며 남은 크루와 함께 우주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을, 조타수는 제 판단착오로 행성 바닥에 크루의 미래를 처박아버리는 순간을, 그리고 더이상 엔터프라이즈 호에 오르지 못할 이들은.

 우후라는 목을 더듬었다. 목에 걸려 있는 그것은 그 전 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제 곁에 있었다. 그녀는 다음 번 휴가를 스팍과 함께 보내게 된다면 그가 준 이 물건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언급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의사양반한테 싹싹 빌어서라도 빼야겠어. ...그런데 자네는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마침 그녀를 발견한 기관실장을 향해 우후라는 입을 열었다.


"미스터 스콧."

"통신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아뇨. 번역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던 문서 건으로 왔죠."

"뭣좀 알아냈나 보구먼!"


 스타플릿이 행성간 교류 최전선에 서기 전부터 언어체계를 분석한 통번역 시스템은 여러 분야에서 크게 한 몫 하고 있었다. 스타플릿이 행성 간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플릿이 되고 난 뒤에는 훨씬 더 폭넓은 체계를 습득해 나갔고, 그렇게 생성된 최신 시스템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면서 엔터프라이즈 호에도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스타플릿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그는 한 자료를 해독하지 못하는 제 패드를 보고 처음에는 패드 자체를 수리 목적으로 맡겼다. 하지만 기계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고, 그 다음에는 시스템에 이상이 있나 싶어 체콥이 유독 좋아하는 마실 거리를 대가로 시스템까지 해킹하는 강수를 뒀지만 전체를 털면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체콥의 말을 끝으로 제 시간만 날렸던 것이다. 그는 천재들이 득시글한 엔터프라이즈를 다시 떠올렸고,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왔다.


"어, 그런데 굳이 내려올 필요가 있나?"

"분석해봤는데, 이건 어느 장소에서 발견되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자료 통째로 보내줬잖수. 어디 보자... 아, 권한이 막혀있구만."


 스콧은 신바람이 나선 대번 그녀의 곁에 섰다. 그녀는 잠시 놀랐으나 곧 눈에 띄지 않게 안심했다.



 함선 내의 누군가가 마음에 평화를 가지기 시작했을 무렵,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메디베이로 친히 행차하고 있던 커크는 갖고 있던 평화를 전부 떨어뜨리고 멈칫 정지해야 했다. 누군가 메디베이에 들락날락 하느라 문이 열려 있던 차에 소리가 새어나온 모양인데, 저 멀리서


"스코티!"


 하는, 저 말고 낼 일 없는 소리가 난 탓이다. 그를 몽고메리 스코티라고 지칭할 이는 아카데미에서 한창 중력 이론을 듣고 있을 시간이다. 다른 이들은 애초에 그와 마주칠 일이 적다. 기관실 내부에서 근무한다면 그는 상관이므로, 더더욱 그렇게 부를 이유가 없다. 그래서 더 의외였다.


"기관실장님이요?"

"언제 한 번 잡아야지 싶긴 했지. 끝장을 보자고."


 방금 본즈가 스코티라고 한 거야?


"그러다 기관실장님도 소속 옮기신다고 하면요?"

"다른 기관실장이 오겠지."


 그는 본즈가 스콧을 그렇게 불렀다는 것에 대해 놀란건지, 아니면 몽고메리 스콧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놀란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제 감정이 어느쪽이건 재미있는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했고, 어쩌다가 본즈가 그를 스코티라 지칭했는지 궁금해졌던 참이다. 당분간은 회항 일정이 잡혀 있어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급이 아니고서야 할 일은 현상 유지 정도였다. 메디베이에서 정기 검진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현상 유지의 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어찌됐건 당분간 따분한 항해가 이어질 상황에서 그의 한 마디는 커크를 일으켜 세웠다. 탐사란 기본적으로 호기심에 기반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는 탐사 지향적인 인간이었다. 레너드 맥코이에게는 지랄맞게도 그랬다.


"상상이 안 되네요."



 커크는 오후 세 시로 추정되는 시간에 메디베이에 들어섰다. 크루들이 일제히 경례했으며, 그 이후에도 시선은 전부 쏠려 있었다. 안 하던 행동을 하는 함장이 무슨 일로 찾아왔나 싶어서 겁부터 먹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손을 저으며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겨 제 친우의 곁에 섰다. 영문을 모르는 본즈는 이게 꿈인가 싶어 주변을 돌아봤다가 시꺼먼 바깥만 한 번 더 보고는 기분만 말아 먹었다.


"너 마침 잘 왔다. 거기 그대로 서 있어."

"왜?"

"왜겠어?"


 오늘도 그에게 목숨을 맡기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호의 크루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기분 보다는 제게 주어진 직무를 책임질 줄 아는 지성체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그 모든것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했고, 그래서 그는 커크의 어깨를 잡아 고정시켰다.


"너만 맞으면 진짜 끝나니까 그렇지."

"잠깐. 뭘 또 맞아?! 얼마 전까지는 정기검진 이라고 했었잖아! 이건 메디베이 전체를 혹사시키는 행위야, 본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의료계에 속해 있는 이상 그들의 삶은 혹사로 가득했다. 기기가 좋아진다고 부상자 명단이 아예 사라졌다면 그들은 진작에 실업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함장이 이런 면을 콕 찝어 언급할 때면, 감동하기 보다는 조금 서글퍼졌다.


"그 전에는?"

"탐사?"

"백신 접종 시즌!"


 이미 지난 거 너 혼자서 이제 맞는거야, 이 자식아! 그는 지성체 집단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종족이 벌칸은 아니라는 점을 또다시 증명해보이며 커크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 부위에 무언가를 냅다 꽂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커크가 새벽에 스콧에게 보여줬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악!"


 호기심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커크는 예상치 못한 대가를 먼저 치러야 했다.

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