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1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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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1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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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2017. 6. 9. 22:56


서우님께 받은 검녹표지 쓰고싶어서 혼신을 다해 저지릅니다.

현재 해당 티스토리에서 연재되고 있는 오메가버스 연작 수요조사 실시합니다.


https://form.office.naver.com/form/responseViewMobile.cmd?formkey=OTc0OTA2ZWYtZDgzMC00MmEwLThiZTUtM2I4N2VjYjlhZmM5&sourceId=urlshare


자세한 사항은 해당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링크 잘못 걸어뒀던 거 수정했습니다.

Posted by _zlos
Others2016. 10. 23. 03:27


 커크는 제 여유 시간이 사라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며 피눈물을 쏟았다. 그는 막 CMO의 발언으로 함선 그 누구보다도 바빠졌던 참이다. 그 본즈가 누구씨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지구였다면 그도 너 요새 걔랑 친하냐, 가볍게 넘겼겠지만 발 딛는 것 부터가 인공 중력 장치에 좌지우지 되는 곳에서는 작은 변화 하나 하나가 비상사태로 퍼지기 십상이니 꼭 함장이 아니더라도 함선에 탄 이들에게 이 정도의 편집증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기본이었다.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전에도 이랬었나? 열심히 떠올렸지만 두 간부의 관계에 대해 그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서로가 서로를 까내리는 순간이었다. 그정도 수준으로 종족 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원시적인 까내림은 23세기 와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진짜배기 명장면이긴 했다. 그는 홍보팀에서 이런 촌극을 현 세기가 되고 나서야 아무런 가책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친애의 상징으로 포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웃다 지쳐 물이 든 컵을 엎었다.

 그런 와중에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크루들은 서로가 서로의 조각을 조금씩 가지기 마련이다. 본즈는 언젠가 이런 굴레에서는 스팍도 훌륭한 예시가 되었다며 제게 낄낄댄 바 있다. 걔한테서 말똥같은 일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거든. 커크는 어떻게 듣게 된 거냐며 비결이나 들어보자 했고 그는 바로 대답했다.


 프랭클린 건 때 그랬어. 지금 와서야 웃긴 거지.


 비 정상적인 상태였다는 의미다. 그럴 일이 없고서야, 둘이 아무리 논쟁을 벌여도 서로의 말버릇까지 옮겨받을 일은 없다고 단정 지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본즈는 자각하지 못할 뿐 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까?


 이젠 스코티도 스코티 라고 부르는데? 


커크는 침착하려 애썼다. 하지만 곧장 들어온 반박에는 그도 대꾸할 수 없었다.


 요크 타운에 임시로 머무르고 있을 때 부터 그랬던 거라면?




"마셔."


 그때쯤, 그 스코티는 얼빠진 표정으로 컵을 받아 들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신뢰로 움직이는 함선이었다. 크루들이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이들을 존중했기에 가능했다. 몽고메리 스콧은 그런 엔터프라이즈 호를 사랑했다. 본즈의 지시에는 당분간 제 업무가 끝날 때 마다 메디베이에 들락거리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어 당분간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그는 얌전히 본즈의 말에 따랐다. 그 나름의 신뢰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게 있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했다. 얼마 전 함장과 이야기했던 크루 같은 경우는 꽤 자주 보였다. 블루셔츠의 손을 거친 그들이 보직을 옮기고 싶을 때 누구의 손을 거쳤겠는가? 스콧은 직접 인원을 다시 배치했고 인원이 비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생기면 직접 스패너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업무를 임시로 맡아 처리하던 킨저에게 구시렁댔다. 메디베이에 승선할 수 있는 건 트레이너가 아냐, 의사지! CMO도 맨날 그러잖아. 젠장, 짐! 나는 의사야! 뭐시깽이가 아니고!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런식으로 점점 순번이 줄더니 이제는 그의 차례까지 오고 말았다. 심지어 그는 만일 자기 자신까지 다른 분야로 보직을 변경한다면 공석이 될 기관실장 직은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면서 메디베이에 왔다. 그런데 정작 도착하고 보니 본즈가 한다는 행동이라곤 그를 흘끗 보더니 대뜸 컵을 건네며 이거나 마시고 가라는 식이 아닌가?


"끝이우?"

"마시면서 들어. 평소에 끼니 제때 챙겨먹지?"

"당연하지. 안 그러면 여덟 시간 볼 거 여섯 시간도 못 보거든. 안 그렇수?"


 말을 끝내자 마자 스콧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본즈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특별한 작업 때 아니면 잠도 꼬박꼬박 잘 거고."

"대부분은 그렇지."

"그런 작업 끝나고 나면 얼마나 자고 나오는지는 기억 나?"

"평소보다야 훨씬 많이 자고 나오지."

"일어나고 나면 어떻고."

"좀 뻐근하긴 한데 개운한 정도?"

"그게 문제야."


 그는 눈에 띄게 긴장했다. 추가 작업을 전부 빼버리라고 하면 골치 아픈데. 당장 보름 뒤면 한 행성에 정박할 예정이었다. 그때쯤 되면 그는 당분간 또다시 바쁠 수밖에 없다. 혹여나 본즈가 제 직권으로 기관실장을 그의 눈 건강에 대한 이슈로 업무에서 강제로 빼주십사 함장에게 찔러넣어도 그가 직접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이면 도리가 없을 정도로, 정박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함선 내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만일 그런 권고를 받는다고 치면 그 전에 관리자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최대한 몰아서 해 두어야 하니 역설적으로 당분간은 추가 근무를 왕창 넣어야 했다. 스콧은 여차하면 싹싹 빌 각오를 하며 침을 삼켰다.


"집힐만한 짓을 안 해."


 그는 스콧을 마주 보았다. 뭐요? 말만 안했지 의뭉스런 눈빛이 스콧의 입을 대신했다.


"끼니도 안 거르고 필요하면 잠도 잘 자. 음주도 허용 가능치 안쪽이고 차도 즐길만큼 정신적으로도 여유롭고. 누구랑 다르게 백신도 꼬박꼬박 잘 맞지. 부상 때문에 올 일은 많아도 찰과상이 눈이랑 직접 관련된 것도 아니고."

"그럼 그냥 두고 보면 안 되는 거요?"

"그럴까 했는데, 심해지는 거 자체는 눈에 보여. 처방이 필요하긴 해. 다 마셨지?"


 스콧은 빈 컵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 그를 본 본즈는 상자 하나를 건넸다. 무게가 제법 됐다. 그 안에는 커다란 W가 써 있는 팩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팩 하나 하나 전부 투명한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물병 대용으로 들고 다녀. 근무 한 번에 다섯 팩 이상 비우고. 한 번에 몰아서 마시면 안 되고 틈틈이 마셔야 효과가 있는 거니까 시간 정해놓고 마셔."

"이게 다 뭔데?"

"물."


 생각외로 싱겁게 끝난 1일차에 스콧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물팩이 가득 든 상자를 들고 메디베이를 나섰다.

 

Posted by _zlos
Others2016. 9. 23. 02:23


 그는 자욱도 안 남은 뒷덜미를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본즈는 그런 그를 볼 수 없었는데, 밀린 보고서 다 끝낸 양 개운해하며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는 함장의 데이터만 마저 입력하면 당분간 볼 일 없을 예방 접종 바로가기 버튼을 날려버릴 생각에 조금 들떠 있었다.


"본즈."

"왜."

"스코티랑 친해?"


 그 자리에 특별 관리 명단 바로가기 버튼이 자리할 것이라는 점을 옆에 계신 누군가가 일깨워 주지만 않았다면 더 기뻤을 것이다.


 에디슨 사건 직후, 스타플릿은 사건을 수습하는 한편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뇌하고 있었다. 좋은 소식은 그들이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었다. 논쟁은 엔터프라이즈 호가 다시 탐사를 떠난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 가치를 내거는 데에는 성공했다.

 스타플릿은 수 세기 전의 스타플릿이 보낸 메시지를 받아 들이고 더 나아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벌써부터 절망을 절망을 담기에는 그들이 지켜낸 요크 타운이 오늘도 우주 한복판을 가로 지르며 서 있었다. 그렇다면 엔터프라이즈 호에 타는 크루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종전과 완전히 동일하게 대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다. 이런 기조 아래, 우선 크루들은 충분한 휴식과 지원이 제공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사를 받았다. 다소 번거로울 수 있는 과정이었지만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인식한 크루들은 협조적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그들은 요크 타운에서 쉴 공간과 약간의 여비를 포함한 공식적, 혹은 비 공식적인 지원을 받았다. 예를 들면 오랜만에 만난 세 크루가 모인 바는 한참 체콥과 잘 되어 가던 요크 타운의 시민이 알려준 곳이고, 주문한 칵테일은 그들을 알아본 주인장이 첫 잔을 공짜로 내어준 것이다.

 하지만 스타플릿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문 하나를 보냈다. 


"호출인가?"


 본즈, 체콥, 둘과 함께 술을 축낼 각오로 앉아 있었던 스콧은 대수롭지 않게 PADD를 활성화 해 공문을 켰고,


"잘못 왔나?"


 현실 부정을 했다. 그렇지만 어디, 현실이 부정한다고 바뀌는 것이었던가. 그랬다면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은 그들이 익히 아는 그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미스터 체콥?"

"저는 못 받았슴니다."


 한 타이밍 먼저 받아 충격도 먼저 받은 본즈는 제 PADD를 그에게 보이며 친절하게 확인 사살했다.


"제대로 온거 맞아."


 같은 내용의 공문이 두 인간의 PADD를 빛내고 있었다. 스콧은 약 사 분 전의 저를 두들겨 패고 싶어졌다.


 함선에 승선한 크루 간 마찰이 생겼을 때, 이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크루 전원이 떼죽음 당하는 건 일도 아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그 이상의 파장이 일 수도 있다... 첫 문단을 읽을때 까지만 해도 당연한 이야기를 왜 써 놓았는지 스콧은 알지 못했다. 그는 이때쯤에 모른 척 PADD를 닫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약간의 의무감과 호기심이 그를 자극했다. 요약하면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스타플릿 내부에서는 크루 간의 관계에 대해 장교들이 좀 더 깊게 관여해야 한다고 판단한 듯 했다. 여기까지도 별 다를 것 없는 정기 보고 관련 공문인가보다 결론 내리고 PADD를 내렸어야 했지만, 그는 결국 제 뒤통수를 때릴 맨 밑 단락까지 보고 말았다.

 함선에 타는 구성원 중 직위가 소령 이상인 크루는 5년 내에 심리 상담에 관련된 자격을 얻을 것. 

 커트라인에 걸친 두 소령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 작자는 죽어서도 왜 이래? 사정을 들은 체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는 술잔을 머리 위로 들며 외쳤다.


"마씝싀다!"



 결과적으로, 퍼질러 자다가 열 한시 반 쯤 일어나서 씻은 다음 밖에 나가 끼니를 때우고, 밤에는 또 신나게 술이나 풀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스콧은 전날 저와 신나게 달린 본즈와 함께 아침 일곱시 반 부터 스타플릿 요크타운 지부 내의 한 사무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함선이 건조되는 대로 다시 탐사를 떠나야 했고, 이는 스타플릿에서 제시한 기간 안에 요구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본부 측에서는 사정을 감안해 자격을 증명하는 것 대신 탐사를 시작하기 전 별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라며 아침 댓바람부터 둘을 불렀던 것이다.


"심리 상담사 8주 완성 코스라도 시키는건 아니겠지?" 


 무심코 본즈가 중얼거렸다. 제 몫으로 주어진 펜을 요리조리 돌리던 스콧이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며 가볍게 타박했으나, 곧 두 소령은 한참 머리를 짜 내던 아카데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요크 타운의 호의를 받아 들이며 삶을 즐기고 있었건만, 소령 급이 되지 않은 다른 크루들은 오늘도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것이 눈 앞에 보였지만, AM에 시작한 강의는 PM이 되고서도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둘은 그 날의 일정이 끝나자 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그냥은 못 가!"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전날처럼 퍼재꼈다. 강의는 이틀 걸러 한 번 씩 있었고 그들은 이틀 걸러 한 번 씩 제 휴가를 강탈해간 스타플릿을 신명나게 까댔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본즈가 먼저 취해 스콧이 트랜스포터에 그를 쑤셔넣은 뒤 목적지를 대신 입력했고, 어느 날은 스콧이 인사불성이 되는 바람에 본즈가 그의 몫까지 땀을 흘려가며 그를 행성 내부를 도는 횡단 열차에 던져 놓고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스콧의 입장에서는 스타플릿을 까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십만 년을 가져다 줘도 모자랐다. 하지만 수료기간은 십만 년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길었고, 둘 간의 술자리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두 인간이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는 점점 넓고 깊어졌다. 간혹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삼천포로 샐 때면 그들은 제 상관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한 명이 먼저 커크의 어떤 모습을 따라하면 나머지 한 명은 언젠가는 상대방의 얼굴 거죽을 쓴 커크를 떠올리며 낄낄거렸다. 그러면 웃는 모습을 들킨 사람이 그날 한 잔 사고, 커크를 따라하고, 그걸 맞은편에서 본 사람이 며칠 뒤에 술 사고, 또 따라하고... 전형적인 알코올 선순환 구도였다. 본즈 with 스콧, feat.커크.


 본즈는 그 과정에서 그를 스코티로 지칭하는 입버릇이 넘어 왔다고 추측했다. 커크의 입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굴러가던 호칭이 당사자를 거쳐 본즈에게 돌아 커크에게 다시 돌아갔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둘은 크루의 안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총 책임자라는 직위상의 위치를 떼어 놓더라도 그 전보다 좀 더 깊은 친분 관계를 가지게 됐으므로 스타플릿이 의도한 방식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성과는 거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런 거였어?"


 커크는 알다가도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표정을 지었다는 것도 몰랐다.

Posted by _zlos
Others2016. 9. 14. 03:04


 생명을 위협받던 때의 기억을 의도치 않게 떠올리는 건 적어도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함선은 행성을 구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갔으나 구성원에게 내재된 스트레스는 불쑥 떠올라 존재를 과시했다. 스타플릿은 이에 대해 전 크루들의 정신적인 면모를 살피고 추후 있을 탐사에 참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함선이 다시 건조되는 동안 정신과 상담을 지정된 횟수 이상 시행하도록 명령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 둔 셈이다. 어떤 생명체는 그정도면 충분히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 호에 그런 생명체만 타는 건 아닌 지라.

 그녀는 간혹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모든 크루가 에디슨에게 생명력을 갈취당하는 비틀린 순간을 떠올리며 손 끝을 떤다. 비단 그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함장만 해도 다른 함장과 공멸하는 순간을, 부함장은 제 심장이 꿰뚫려 죽는 순간을, CMO는 겨우겨우 살려놓은 이들과 함께 요크 타운에 불시착해 잿가루가 되는 순간을, 기관실장은 대기권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제 착오로 살피지 못한 단 한 곳을 떠올리며 남은 크루와 함께 우주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을, 조타수는 제 판단착오로 행성 바닥에 크루의 미래를 처박아버리는 순간을, 그리고 더이상 엔터프라이즈 호에 오르지 못할 이들은.

 우후라는 목을 더듬었다. 목에 걸려 있는 그것은 그 전 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제 곁에 있었다. 그녀는 다음 번 휴가를 스팍과 함께 보내게 된다면 그가 준 이 물건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언급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의사양반한테 싹싹 빌어서라도 빼야겠어. ...그런데 자네는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마침 그녀를 발견한 기관실장을 향해 우후라는 입을 열었다.


"미스터 스콧."

"통신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아뇨. 번역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던 문서 건으로 왔죠."

"뭣좀 알아냈나 보구먼!"


 스타플릿이 행성간 교류 최전선에 서기 전부터 언어체계를 분석한 통번역 시스템은 여러 분야에서 크게 한 몫 하고 있었다. 스타플릿이 행성 간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플릿이 되고 난 뒤에는 훨씬 더 폭넓은 체계를 습득해 나갔고, 그렇게 생성된 최신 시스템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면서 엔터프라이즈 호에도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스타플릿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그는 한 자료를 해독하지 못하는 제 패드를 보고 처음에는 패드 자체를 수리 목적으로 맡겼다. 하지만 기계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고, 그 다음에는 시스템에 이상이 있나 싶어 체콥이 유독 좋아하는 마실 거리를 대가로 시스템까지 해킹하는 강수를 뒀지만 전체를 털면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체콥의 말을 끝으로 제 시간만 날렸던 것이다. 그는 천재들이 득시글한 엔터프라이즈를 다시 떠올렸고,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왔다.


"어, 그런데 굳이 내려올 필요가 있나?"

"분석해봤는데, 이건 어느 장소에서 발견되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자료 통째로 보내줬잖수. 어디 보자... 아, 권한이 막혀있구만."


 스콧은 신바람이 나선 대번 그녀의 곁에 섰다. 그녀는 잠시 놀랐으나 곧 눈에 띄지 않게 안심했다.



 함선 내의 누군가가 마음에 평화를 가지기 시작했을 무렵,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메디베이로 친히 행차하고 있던 커크는 갖고 있던 평화를 전부 떨어뜨리고 멈칫 정지해야 했다. 누군가 메디베이에 들락날락 하느라 문이 열려 있던 차에 소리가 새어나온 모양인데, 저 멀리서


"스코티!"


 하는, 저 말고 낼 일 없는 소리가 난 탓이다. 그를 몽고메리 스코티라고 지칭할 이는 아카데미에서 한창 중력 이론을 듣고 있을 시간이다. 다른 이들은 애초에 그와 마주칠 일이 적다. 기관실 내부에서 근무한다면 그는 상관이므로, 더더욱 그렇게 부를 이유가 없다. 그래서 더 의외였다.


"기관실장님이요?"

"언제 한 번 잡아야지 싶긴 했지. 끝장을 보자고."


 방금 본즈가 스코티라고 한 거야?


"그러다 기관실장님도 소속 옮기신다고 하면요?"

"다른 기관실장이 오겠지."


 그는 본즈가 스콧을 그렇게 불렀다는 것에 대해 놀란건지, 아니면 몽고메리 스콧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놀란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제 감정이 어느쪽이건 재미있는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했고, 어쩌다가 본즈가 그를 스코티라 지칭했는지 궁금해졌던 참이다. 당분간은 회항 일정이 잡혀 있어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급이 아니고서야 할 일은 현상 유지 정도였다. 메디베이에서 정기 검진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현상 유지의 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어찌됐건 당분간 따분한 항해가 이어질 상황에서 그의 한 마디는 커크를 일으켜 세웠다. 탐사란 기본적으로 호기심에 기반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는 탐사 지향적인 인간이었다. 레너드 맥코이에게는 지랄맞게도 그랬다.


"상상이 안 되네요."



 커크는 오후 세 시로 추정되는 시간에 메디베이에 들어섰다. 크루들이 일제히 경례했으며, 그 이후에도 시선은 전부 쏠려 있었다. 안 하던 행동을 하는 함장이 무슨 일로 찾아왔나 싶어서 겁부터 먹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손을 저으며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겨 제 친우의 곁에 섰다. 영문을 모르는 본즈는 이게 꿈인가 싶어 주변을 돌아봤다가 시꺼먼 바깥만 한 번 더 보고는 기분만 말아 먹었다.


"너 마침 잘 왔다. 거기 그대로 서 있어."

"왜?"

"왜겠어?"


 오늘도 그에게 목숨을 맡기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호의 크루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기분 보다는 제게 주어진 직무를 책임질 줄 아는 지성체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그 모든것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했고, 그래서 그는 커크의 어깨를 잡아 고정시켰다.


"너만 맞으면 진짜 끝나니까 그렇지."

"잠깐. 뭘 또 맞아?! 얼마 전까지는 정기검진 이라고 했었잖아! 이건 메디베이 전체를 혹사시키는 행위야, 본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의료계에 속해 있는 이상 그들의 삶은 혹사로 가득했다. 기기가 좋아진다고 부상자 명단이 아예 사라졌다면 그들은 진작에 실업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함장이 이런 면을 콕 찝어 언급할 때면, 감동하기 보다는 조금 서글퍼졌다.


"그 전에는?"

"탐사?"

"백신 접종 시즌!"


 이미 지난 거 너 혼자서 이제 맞는거야, 이 자식아! 그는 지성체 집단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종족이 벌칸은 아니라는 점을 또다시 증명해보이며 커크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 부위에 무언가를 냅다 꽂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커크가 새벽에 스콧에게 보여줬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악!"


 호기심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커크는 예상치 못한 대가를 먼저 치러야 했다.

Posted by _zlos
Others2016. 9. 10. 18:52


 한 인간이 한 인간 부축 하는 것 보다야 두 인간이 한 인간 부축하는 게 낫다. 다른 방안으로는 한 벌칸이 한 인간을 부축하는 것이 있겠고, 더 좋은 방안은 그냥 이 인간이 일어나서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디비져 자는 것이 있겠다. 그러려면 본즈 전용 기상 코드가 하나 있으니 그걸 쓰면 되는데, 이놈이 효과 하나는 함장을 향해 꽂히는 하이포 급으로 봐도 될 정도로 끝내주는 데다가 자폭 코드와는 다르게 권한 제한도 없다. 그냥 외치면 된다. 


"본즈가...끙."


 전방에 부상자가 있습니다!


"직업병 가지고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


 본즈가 지금까지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직업병이 뭐라고 우주를 영 꺼림직하게 보는 본인의 아이덴티티도 극복하고 함선에 발 붙이고 서있겠는가? 그러나 커크는 그 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실은 그러는 커크도 모르는 새 이마 부근에 혈관 하나가 길고 굵게 솟아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자기도 졸려 죽겠는데 남 먼저 재우려니 두 배로 빨리 피곤해지는 모양새인데, 스콧은 문득 저 현상도 직업병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지 궁금해졌지만 의문을 해결해줄 이는 저 멀리, 파이널 프론티어 너머에서 유영중이었다. 둘 다, 그런 본즈를 깨울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내 말이 그 말이우. 그러면서 늘 타박 당하는건 이쪽이고."

"왜, 하이포라도 놨어?"


 이렇게? 커크는 잠깐 멈춰서더니 남는 손으로 부드럽게 주먹을 쥐어 말더니 냅다 꽂는 시늉을 했다. 스콧은 덩달아 멈춰서서는 눈알만 열심히 굴려대며 말했다.


"더 무서운 걸 놨지요."


 레드 셔츠 크루 사이에서 꾸준히 도는 괴담이다. '닥터 본즈와 함께하는 일과 마무리는 메디베이에서' 과정을 한 달 이상 수강하게 되면 어떻게든 몸을 신경 쓰게 됩니다. 뭘 할 수가 없어요.


"당분간 뭐 하기는 글렀수다."

"잘 됐네! 함장의 마음을 이해하는 크루가 한 명 더 늘겠는걸. 덕분에 기관실장과의 사이가 좀 더 돈독해지겠어."

"아이고."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뒀지."


 함장은 윙크 한 발을 친히 하사했고 기관실장은 뒷골 잡는 시늉을 했다. 둘은 낄낄대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장님."

"응."

"함장님은 매 번 그 걸 듣는 셈이겠네요?"

"그렇지?"


 함선 내에서 허공을 나는 하이포가 있다 하면 십중 팔구 그 주변에는 함장과 CMO가 같이 있었다. 함장의 체질도 체질이거니와, 직위를 떠나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라는 생명체의 천성과도 맞닿아 있는 광경인지라 거기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크루는 거의 없었다.


"어떻게 변하질 않는 거요?"


 커크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굴이 왕창 찌그러졌다. 저래도 잘 생겼네. 스콧은 큭큭대며 말을 이었다. 그새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지만, 마주 본 이 말고는 알 사람이 없었다.


"그 왜, 저저번 탐사때 같이 내려갔다가 혼자 픽 쓰러져서 빔업된 크루 기억해요?"

"스팍이 부축해서 데려갔던 크루 말하는 거지? 기억 나."

"그런 사단 한 번은 날 줄 알았수. 자기 입으로 움직이기 귀찮아 한다고 했었거든. 식사도 귀찮아하고 막."

"식사도?"

"예에."


 함선 내 생활에서 영양분 보충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사실이라면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알면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그럴리가요! 바로 말 했죠! 그런데 지금 짐짝처럼 매달린 인간이 그럽디다. 전 부터 알고 있었다고요."

"지금도 그래?"


 스콧은 본즈가 여전히 깨지 않았는지 충분히 확인한 뒤 당신만 들으라는 듯 조용히 속삭였다.


"블루 셔츠들한테 한 한 달인가 시달리더니 전투 담당으로 보직 변경 신청했습니다."


 제가 알던 그 크루 안 같아요. 셔츠 색만 같지 완전히 다른 크루 같다니까요. 워우. 커크는 좀 전 스콧이 제게 보여줬던 것 처럼 눈알을 굴렸다.


"그런데 함장님은 아니잖아요."

"안 들으면 되니까!"


 함장이 또!



 얼마간 코까지 골며 자던 레너드는 베게에 제 머리를 비비적대다가 기어코 폭탄 터진 흔적을 만들고 나서야 깼다. 제 방에 얌전히 처박혀 있는 걸 보니 누가 데려다 놓았나보다, 싶었고 저절로 눈이 떠진 걸 보니 아침인가? 싶었다. 하지만 쨍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돌렸더니 밤인지 낮인지 모를 시꺼먼 배경만 보였다.


"댐잇!"


 아침이고 뭐고 이러면 레너드 맥코이의 하루 운세는 일단 말아먹고 시작하는 셈이다. 하지만 얼굴에 물을 끼얹고 면도를 하며 정신을 차릴 때 즈음이면 그는 이미 본즈였다. 그는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아는 이 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은 그의 생존 방식이다. 언젠가는 탈피해야 할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저를 놓아주지 않는 이상 죽을때까지 이러고 살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도 그의 정신 건강은 한 번을 제외하고는 엔터프라이즈 호 내부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끊임없이 할 일이 주어지는 엔터프라이즈 호 생활이 각자의 비극을 희석 시켜서 인지, 정말로 크루 하나하나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런 판단은 당사자보다 외부에서 내리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결론내린 그는 구태여 파고들지 않았다.


 그는, 그럴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거지같은 아침."


 본즈는 메디베이 식 CMO 온 더 메디베이를 외치며 구역에 들어섰다. 항생제를 맞고 있던 한 크루가 더듬이를 푸드덕대자 근처에 있던 담당 크루가 재빨리 날아가 상태를 살폈다.


"정기 검진 보내느라 수고들 했어. 한 이틀은 최대한 맡은 일만 처리할 수 있게 신경 써보자고."


 이런 류의 이야기는 다치지 말란다고 안 다쳐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 마나한 종류에 속한다. 메디베이에서 백날천날 신경 써봐야 소용 없는데도 이런 말을 굳이 한다는 건 본즈의 종족이 인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메디베이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무슨 일 또 생겼어요?"

"검진 끝나고 할 일이 그거 말고 더 있겠어?"

"오."


 크루들이 일제히 제 방식대로 탄식했다.


"이번엔 누군데요?"


 본즈는 비품을 체크하며 외쳤다.


"스코티!"



 때마침 그는 코어 정기점검을 겸해 '그 크루'에게서 경험담을 전해 듣던 중이었다. 직접 언급해야 할 부분이 있어 드물게도 코어에 내려와 있던 우후라는 저 멀리서 다른 크루와 이야기하는 스콧을 발견했지만 시시각각 반죽 주무르듯 변하는 얼굴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려야 했다.


Posted by _zlos
Others2016. 9. 9. 04:52


 기관실 내부는 다소 존재-비하적 환경을 유지하는 곳이다. 이상이 펼쳐져 있는 구역에서 그 이상이 되도록이면 깨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뭐 그런 놈들이 다 있냐 물어볼 무례한 존재들은 보통 스타쉽에 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습기는 구역 내에서 퇴출되었다. 

 이런 식의 몇 가지 사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계는 기계와 상성이 가장 잘 맞았다. 기계를 만든 이들 조차도 그 사실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스타플릿에서 발견한 모든 생명체들을 기준으로 하면 그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존재의 비율보다 그렇지 못한 존재의 비율이 훨씬 높은데,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 끝나지 않을 이들이 다룰 수 있는 개념은 아닐 지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관실에서 근무하는 구성원들은 기꺼이 존재-비하적 환경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이것 저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수시로 눈을 껌뻑이게 되는 직업병도 달고 살았다. 무슨 짓을 해도 온도, 습도, 밀폐된 환경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장소에서 매일같이 근무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불가능했다.


"포기하슈."

"포기?"


 엔터프라이즈 호에 레드 셔츠만 타면 모를까?



 기관실과 메디베이는 명확히 다른 분야를 다룬다고 인정받고 있지만 그들의 사고 방식이나 논리 구조는 유사한 면이 존재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늘상 좋게좋게 넘어갈 수는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같은 눈 껌뻑임 증상을 같은 직위의 눈에서, 그것도 어느정도 연륜이 쌓였을 소령의 시점으로 바라본다고 가정하자. 그들의 차이는 레드 셔츠를 입은 소령인가, 블루 셔츠를 입은 소령인가 정도다.


"좀 감았다 뜨면 괜찮더만!"

"내리고 싶어?"


 골이란 개념은 이런 식으로 '어물쩡 거리다가' 생겨나고 만다. 블루 셔츠 식 언동을 인용하자면 '그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려다 명줄 끊긴다'가 될 게, 레드 셔츠 식 언어로는 '안 죽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 언동이 조금 더 힘을 얻느냐 하면 지금은 정기 검진 시즌이므로 전자의 힘이 훨씬 강했다.


"물 제때 마시고 자주 올라와라. 더 해줄 말 없다."

"기관실에 물을 들고 다니라고? 정신 나갔수?"

"그럼 사체라도 내 명의로 돌려놓고 오던가. 매번 사람 꼴로 만들어 놓고 가면 당사자가 도로 다 죽여서 데려오는데 뭘 더 해줘?"

"거 참, 가끔 올라오면 될 거 아니요."


 기관실장은 툴툴대면서도 한 수 접었다. 간혹 블루셔츠를 입은 크루 한둘이 기관실까지 내려와 킨저에게 들려 보내는 기초 영양제 봉지가 떠올랐던 탓이라기 보다는, 딱히 틀린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미 생긴 주름도 죽죽 펴내는 세상에 영원히 메꿀 수 없는 골 같은 건 없다.


"끝나면 한 잔?"

"다음 주 이맘때 쯤은 되어야 할 걸."

"딜. 까먹지 말고 오슈. 저번에 잠깐 내렸을 때 기가막힌 놈 하나 구해다 놨거든."


'어차피 죽지는 않으니까'.



 스콧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껌뻑였다. 그는 적당한 습기를 필요로 하는 인간 남성체 였으므로 기관실의 존재-비하적 환경과 백 퍼센트 일치한 삶을 사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백 퍼센트가 아니라 팔십 퍼센트 정도로 타협하고 지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이런 곳에 창 뚫어 놓을 생각은 누가 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오 년은 생각보다 길다는 걸 아는 놈, 개중에 로망은 아는 놈."


 찻잔 두 개가 가볍게 부딪쳤다. 본즈는 멀쩡한 잔 두고 굳이 찻잔에 스카치를 부어야 할 이유를 몰라 직접 물어본 적이 제법 많지만 매번 바뀌는 대답 중 제대로 된 대답이 단 하나도 없다고 확신한 뒤로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찻잔에 붓건 머그잔에 붓건 그 안에 든 놈이 온갖 끔찍할 수 있는 건덕지를 다 가지고 있는 우주를 잊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했으므로 언젠가는 이야기 하겠거니, 넘기고 만 것이다.

 대신 그는 끊이지 않는 공허를 즐기는 스콧을 바라봤다. 직접 보는 것 보다야 한 번이라도 필터를 거치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훨씬 나았다.


"로망?"

"내 입으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제길, 난 행성 밖 삶이 끔직한 사람이라고."


 그는 이미 함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제 우주 공포증에 대해 천천히 늘어놓았다. 스콧은 그럭저럭 잘 맞는 술친구의 잡담과 야경인지 아닌지 모를 함선 밖 풍경을 안주삼아 밤을 지샐 작정이었다.



 그러니까, 근 일 주일 간 정기 검진때문에 제 체력 깎인 걸 무시하고 평소처럼 들이켜버린 본즈가 완전히 넉다운 되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됐을 것인데.


"좀!"


 정신좀 차려라 제발. 스콧은 본즈가 환자를 기대게 하던 방식 그대로 제게 기대게 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곧 정기 검진으로 인원 교대가 평소보다 빡빡했던 사이 잘 숙성된 그의 욕설이 엔터프라이즈 호를 뒤덮을 차례였다.


"스코티?"


 선내 지휘권을 잠시 넘기고 눈 좀 붙이려던 함장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Posted by _zlos
Others2015. 1. 4. 18:59
2014. 9. 1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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