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2016. 9. 9. 04:52


 기관실 내부는 다소 존재-비하적 환경을 유지하는 곳이다. 이상이 펼쳐져 있는 구역에서 그 이상이 되도록이면 깨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뭐 그런 놈들이 다 있냐 물어볼 무례한 존재들은 보통 스타쉽에 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습기는 구역 내에서 퇴출되었다. 

 이런 식의 몇 가지 사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계는 기계와 상성이 가장 잘 맞았다. 기계를 만든 이들 조차도 그 사실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스타플릿에서 발견한 모든 생명체들을 기준으로 하면 그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존재의 비율보다 그렇지 못한 존재의 비율이 훨씬 높은데,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 끝나지 않을 이들이 다룰 수 있는 개념은 아닐 지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관실에서 근무하는 구성원들은 기꺼이 존재-비하적 환경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이것 저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수시로 눈을 껌뻑이게 되는 직업병도 달고 살았다. 무슨 짓을 해도 온도, 습도, 밀폐된 환경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장소에서 매일같이 근무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불가능했다.


"포기하슈."

"포기?"


 엔터프라이즈 호에 레드 셔츠만 타면 모를까?



 기관실과 메디베이는 명확히 다른 분야를 다룬다고 인정받고 있지만 그들의 사고 방식이나 논리 구조는 유사한 면이 존재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늘상 좋게좋게 넘어갈 수는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같은 눈 껌뻑임 증상을 같은 직위의 눈에서, 그것도 어느정도 연륜이 쌓였을 소령의 시점으로 바라본다고 가정하자. 그들의 차이는 레드 셔츠를 입은 소령인가, 블루 셔츠를 입은 소령인가 정도다.


"좀 감았다 뜨면 괜찮더만!"

"내리고 싶어?"


 골이란 개념은 이런 식으로 '어물쩡 거리다가' 생겨나고 만다. 블루 셔츠 식 언동을 인용하자면 '그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려다 명줄 끊긴다'가 될 게, 레드 셔츠 식 언어로는 '안 죽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 언동이 조금 더 힘을 얻느냐 하면 지금은 정기 검진 시즌이므로 전자의 힘이 훨씬 강했다.


"물 제때 마시고 자주 올라와라. 더 해줄 말 없다."

"기관실에 물을 들고 다니라고? 정신 나갔수?"

"그럼 사체라도 내 명의로 돌려놓고 오던가. 매번 사람 꼴로 만들어 놓고 가면 당사자가 도로 다 죽여서 데려오는데 뭘 더 해줘?"

"거 참, 가끔 올라오면 될 거 아니요."


 기관실장은 툴툴대면서도 한 수 접었다. 간혹 블루셔츠를 입은 크루 한둘이 기관실까지 내려와 킨저에게 들려 보내는 기초 영양제 봉지가 떠올랐던 탓이라기 보다는, 딱히 틀린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미 생긴 주름도 죽죽 펴내는 세상에 영원히 메꿀 수 없는 골 같은 건 없다.


"끝나면 한 잔?"

"다음 주 이맘때 쯤은 되어야 할 걸."

"딜. 까먹지 말고 오슈. 저번에 잠깐 내렸을 때 기가막힌 놈 하나 구해다 놨거든."


'어차피 죽지는 않으니까'.



 스콧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껌뻑였다. 그는 적당한 습기를 필요로 하는 인간 남성체 였으므로 기관실의 존재-비하적 환경과 백 퍼센트 일치한 삶을 사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백 퍼센트가 아니라 팔십 퍼센트 정도로 타협하고 지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이런 곳에 창 뚫어 놓을 생각은 누가 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오 년은 생각보다 길다는 걸 아는 놈, 개중에 로망은 아는 놈."


 찻잔 두 개가 가볍게 부딪쳤다. 본즈는 멀쩡한 잔 두고 굳이 찻잔에 스카치를 부어야 할 이유를 몰라 직접 물어본 적이 제법 많지만 매번 바뀌는 대답 중 제대로 된 대답이 단 하나도 없다고 확신한 뒤로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찻잔에 붓건 머그잔에 붓건 그 안에 든 놈이 온갖 끔찍할 수 있는 건덕지를 다 가지고 있는 우주를 잊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했으므로 언젠가는 이야기 하겠거니, 넘기고 만 것이다.

 대신 그는 끊이지 않는 공허를 즐기는 스콧을 바라봤다. 직접 보는 것 보다야 한 번이라도 필터를 거치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훨씬 나았다.


"로망?"

"내 입으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제길, 난 행성 밖 삶이 끔직한 사람이라고."


 그는 이미 함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제 우주 공포증에 대해 천천히 늘어놓았다. 스콧은 그럭저럭 잘 맞는 술친구의 잡담과 야경인지 아닌지 모를 함선 밖 풍경을 안주삼아 밤을 지샐 작정이었다.



 그러니까, 근 일 주일 간 정기 검진때문에 제 체력 깎인 걸 무시하고 평소처럼 들이켜버린 본즈가 완전히 넉다운 되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됐을 것인데.


"좀!"


 정신좀 차려라 제발. 스콧은 본즈가 환자를 기대게 하던 방식 그대로 제게 기대게 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곧 정기 검진으로 인원 교대가 평소보다 빡빡했던 사이 잘 숙성된 그의 욕설이 엔터프라이즈 호를 뒤덮을 차례였다.


"스코티?"


 선내 지휘권을 잠시 넘기고 눈 좀 붙이려던 함장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