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한 인간 부축 하는 것 보다야 두 인간이 한 인간 부축하는 게 낫다. 다른 방안으로는 한 벌칸이 한 인간을 부축하는 것이 있겠고, 더 좋은 방안은 그냥 이 인간이 일어나서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디비져 자는 것이 있겠다. 그러려면 본즈 전용 기상 코드가 하나 있으니 그걸 쓰면 되는데, 이놈이 효과 하나는 함장을 향해 꽂히는 하이포 급으로 봐도 될 정도로 끝내주는 데다가 자폭 코드와는 다르게 권한 제한도 없다. 그냥 외치면 된다.
"본즈가...끙."
전방에 부상자가 있습니다!
"직업병 가지고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
본즈가 지금까지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직업병이 뭐라고 우주를 영 꺼림직하게 보는 본인의 아이덴티티도 극복하고 함선에 발 붙이고 서있겠는가? 그러나 커크는 그 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실은 그러는 커크도 모르는 새 이마 부근에 혈관 하나가 길고 굵게 솟아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자기도 졸려 죽겠는데 남 먼저 재우려니 두 배로 빨리 피곤해지는 모양새인데, 스콧은 문득 저 현상도 직업병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지 궁금해졌지만 의문을 해결해줄 이는 저 멀리, 파이널 프론티어 너머에서 유영중이었다. 둘 다, 그런 본즈를 깨울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내 말이 그 말이우. 그러면서 늘 타박 당하는건 이쪽이고."
"왜, 하이포라도 놨어?"
이렇게? 커크는 잠깐 멈춰서더니 남는 손으로 부드럽게 주먹을 쥐어 말더니 냅다 꽂는 시늉을 했다. 스콧은 덩달아 멈춰서서는 눈알만 열심히 굴려대며 말했다.
"더 무서운 걸 놨지요."
레드 셔츠 크루 사이에서 꾸준히 도는 괴담이다. '닥터 본즈와 함께하는 일과 마무리는 메디베이에서' 과정을 한 달 이상 수강하게 되면 어떻게든 몸을 신경 쓰게 됩니다. 뭘 할 수가 없어요.
"당분간 뭐 하기는 글렀수다."
"잘 됐네! 함장의 마음을 이해하는 크루가 한 명 더 늘겠는걸. 덕분에 기관실장과의 사이가 좀 더 돈독해지겠어."
"아이고."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뒀지."
함장은 윙크 한 발을 친히 하사했고 기관실장은 뒷골 잡는 시늉을 했다. 둘은 낄낄대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장님."
"응."
"함장님은 매 번 그 걸 듣는 셈이겠네요?"
"그렇지?"
함선 내에서 허공을 나는 하이포가 있다 하면 십중 팔구 그 주변에는 함장과 CMO가 같이 있었다. 함장의 체질도 체질이거니와, 직위를 떠나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라는 생명체의 천성과도 맞닿아 있는 광경인지라 거기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크루는 거의 없었다.
"어떻게 변하질 않는 거요?"
커크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굴이 왕창 찌그러졌다. 저래도 잘 생겼네. 스콧은 큭큭대며 말을 이었다. 그새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지만, 마주 본 이 말고는 알 사람이 없었다.
"그 왜, 저저번 탐사때 같이 내려갔다가 혼자 픽 쓰러져서 빔업된 크루 기억해요?"
"스팍이 부축해서 데려갔던 크루 말하는 거지? 기억 나."
"그런 사단 한 번은 날 줄 알았수. 자기 입으로 움직이기 귀찮아 한다고 했었거든. 식사도 귀찮아하고 막."
"식사도?"
"예에."
함선 내 생활에서 영양분 보충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사실이라면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알면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그럴리가요! 바로 말 했죠! 그런데 지금 짐짝처럼 매달린 인간이 그럽디다. 전 부터 알고 있었다고요."
"지금도 그래?"
스콧은 본즈가 여전히 깨지 않았는지 충분히 확인한 뒤 당신만 들으라는 듯 조용히 속삭였다.
"블루 셔츠들한테 한 한 달인가 시달리더니 전투 담당으로 보직 변경 신청했습니다."
제가 알던 그 크루 안 같아요. 셔츠 색만 같지 완전히 다른 크루 같다니까요. 워우. 커크는 좀 전 스콧이 제게 보여줬던 것 처럼 눈알을 굴렸다.
"그런데 함장님은 아니잖아요."
"안 들으면 되니까!"
함장이 또!
얼마간 코까지 골며 자던 레너드는 베게에 제 머리를 비비적대다가 기어코 폭탄 터진 흔적을 만들고 나서야 깼다. 제 방에 얌전히 처박혀 있는 걸 보니 누가 데려다 놓았나보다, 싶었고 저절로 눈이 떠진 걸 보니 아침인가? 싶었다. 하지만 쨍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돌렸더니 밤인지 낮인지 모를 시꺼먼 배경만 보였다.
"댐잇!"
아침이고 뭐고 이러면 레너드 맥코이의 하루 운세는 일단 말아먹고 시작하는 셈이다. 하지만 얼굴에 물을 끼얹고 면도를 하며 정신을 차릴 때 즈음이면 그는 이미 본즈였다. 그는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아는 이 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은 그의 생존 방식이다. 언젠가는 탈피해야 할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저를 놓아주지 않는 이상 죽을때까지 이러고 살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도 그의 정신 건강은 한 번을 제외하고는 엔터프라이즈 호 내부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끊임없이 할 일이 주어지는 엔터프라이즈 호 생활이 각자의 비극을 희석 시켜서 인지, 정말로 크루 하나하나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런 판단은 당사자보다 외부에서 내리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결론내린 그는 구태여 파고들지 않았다.
그는, 그럴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거지같은 아침."
본즈는 메디베이 식 CMO 온 더 메디베이를 외치며 구역에 들어섰다. 항생제를 맞고 있던 한 크루가 더듬이를 푸드덕대자 근처에 있던 담당 크루가 재빨리 날아가 상태를 살폈다.
"정기 검진 보내느라 수고들 했어. 한 이틀은 최대한 맡은 일만 처리할 수 있게 신경 써보자고."
이런 류의 이야기는 다치지 말란다고 안 다쳐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 마나한 종류에 속한다. 메디베이에서 백날천날 신경 써봐야 소용 없는데도 이런 말을 굳이 한다는 건 본즈의 종족이 인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메디베이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무슨 일 또 생겼어요?"
"검진 끝나고 할 일이 그거 말고 더 있겠어?"
"오."
크루들이 일제히 제 방식대로 탄식했다.
"이번엔 누군데요?"
본즈는 비품을 체크하며 외쳤다.
"스코티!"
때마침 그는 코어 정기점검을 겸해 '그 크루'에게서 경험담을 전해 듣던 중이었다. 직접 언급해야 할 부분이 있어 드물게도 코어에 내려와 있던 우후라는 저 멀리서 다른 크루와 이야기하는 스콧을 발견했지만 시시각각 반죽 주무르듯 변하는 얼굴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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