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2018. 6. 26. 01:27



  얼마 뒤 루이스는 박스가 있을 자리에 능력자들로 가득 찬 클랜 관리소를 볼 수 있었다. 클랜 지원금 제도가 개편되면서 생긴 일이었다. 헬리오스의 대변인은 능력자들을 호주머니 사정으로 차별하지 않고자 결정했다며 빛깔좋은 이야기를 전했지만, 실상은 클랜 운영비 명목으로 회사에서 클랜 자금을 관리한다는 점에 대해 연합측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기에 변한 것이었다. 러쉬톤이 휴톤과 도일, 두 사람과 함께 뜬금없이 클랜을 신청했던 것도 상황을 직접 겪은 뒤 회의에 직접 참여하라던 앤지의 지시 때문이라는 걸 알게된 그는 클랜이 헬리오스의 손에 떨어졌다는 점을 꾸준히 못마땅해 하던 그녀가 조금 더 연합의 방식에 가깝게 제도를 바꿨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루이스 씨. 주인장 안에 계세요?"

"안쪽에 계십니다."


 대부분의 능력자들은 그런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클랜 운영비를 능력자 개인의 기부금을 받지 않고 연합, 회사, 재단측이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방향의 포인트 제도라는 건 알았다. 돈 빠질 구석 하나 줄이는 개편이니 기부금을 명목으로 제 배를 불리던 몇몇 클랜의 간부들이 아니고서야 바뀐 제도에 대해 거리낌없이 찬성표를 던진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란 온갖 일이 다 터지기 마련인데,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공식적인 담당자가 한 명밖에 없어 일처리가 밀리고 있단 점이었다. 


"오늘도 저래요?"

"네."


 루이스는 아직 클랜에 소속된 능력자가 아니었기에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평소 버릇 그대로 광장을 구경하려다 얼마 지나지않아 외근직 회사원 한 명이 광장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능력자들을 간신히 감당하는 꼴에 지켜보는 자신이 다 지칠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시선을 거뒀다. 짬을 내 서점에 들러 책 몇 권을 사며 주인과 별별 이야기를 다 하던 클랜 매니저의 모습을 그린듯이 떠올릴 수 있는 그조차 짜증을 부리면서도 착실히 서류를 쌓아가는 저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바빠 보여 약간의 연민마저 생긴 탓이었다.


"박스 다 치워서 저정도야. 무슨 일로 나를 다 찾고?"

"저번에 부탁드린 책 때문에요. 어, 그러네. 박스 다 치웠네요?"


 붐비는 바깥과는 다르게 서점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주인장이 손님과 말을 주고 받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며칠 됐지. 은근히 신경 쓰였는데 어디로 싹 가져 가더라고."


 제도가 바뀌기로 결정된 날, 삼자 회의에 참여했던 러쉬톤은 연합에서 술판을 벌이곤 문제의 그 박스를 회의장에서 볼 줄은 몰랐다며 한참을 떠들었다. SPEAR가 실무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진행되던 중엔 FAITH가 박스 하나를 들고 와서 직접 내용물을 공개했는데, 그 안에 클랜 제도를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모였던 클랜별 기부금 목록을 기록해둔 서류가 있던 모양이었다. 기밀 서류니 관계자 외엔 열람이 불가능해야 맞았고, 클랜 활동비 관련 자료였으니 이제와서 광장에 있을 물건은 아니었다.


"다행이예요."

"그럼. 그때 그게 그대로 쌓여 있었으면 저기 서 있는 사람 몇 명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서 있었을 거요."


 그는 주인장의 말을 들으며 시선을 창문 너머 광장으로 다시 옮겼다. 여전히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있었다. 클랜에 가입한 능력자들이 전부 트와일라잇에 찾아온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 모습은 어느날 그가 느꼈던 밤의 광장과 달라도 너무 달랐고, 그렇게 무심코 어느날 밤의 어느 장면을 떠올리고 만 그는 넌덜머리를 내며 책 두어 권을 마저 쌓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럴 일은 없을 거고……. 저 부스에 있는 사람을 걱정해야 될 것 같은 걸요.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몰라."

"그 이상한 놈팽이?"

"이미 박스는 치웠잖아요. 차라리 저 인파에 누구 한 명 깔려죽을 것 같은 걸요."

"그놈 용기사야."

"용기사요? 스페인의?"


 입을 쩍 벌린 손님과는 다르게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이 해야할 일만 하고 있었다. 되짚어보면 그의 인생사에는 까먹을 만 하면 스페인의 용기사들이 얽혀 들었다. 2차 능력자 전쟁때의 FAITH가 그랬고, 광장에서의 일상엔 SPEAR가 그랬다. 그렇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루이스는 그들에 대해 여전히 잘 알지 못했다.


"뭘 놀라? 억양부터가 그쪽 억양이잖아."

"FAITH같은 사람들이나 용기사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저 말은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란 점 정도는 알았다. 그는 당장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FAITH를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광장 근처의 카페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산 모양인지 봉투 몇 개를 들고 가던 FAITH와 인사를 할 때 까지만 해도 조금 의외였을 뿐 별다른 일은 없을 줄 알았건만, 바로 뒤에  따라나오는 말들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 뿐이었다.


"그 FAITH도 가끔 그놈을 찾아가는 걸 본 적이 있어."

"왜요?"


 드렉슬러의 재능에 눈이 먼 사람은 많지. 하지만 곁에 선 이가 그리 많지는 않아.

 …….

 그 이유가 그의 성격 때문 만은 아니고.

 관심 없습니다.

 지난번에 나와 드렉슬러를 지켜본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모를거라고 생각했나?

 그 때도, SPEAR란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야 할 걸세. 그 때도, 앞으로도.


"글쎄, 우리같은 사람들이 알 리가 있나."


 외골수라 그렇지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광장의 그놈이랑 어울리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주인장의 이야기를 듣던 루이스는 이왕이면 그가 FAITH의 그런 부분은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다. 자기만 봐도 그랬다.



뤼스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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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