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2018. 6. 19. 12:02


 루이스는 그놈의 박스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게 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합의 아지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 외의 장면을 보고 들은 지금, 그는 아지트로 통하는 샛길이 일직선으로 쭉 걸어가면 나온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면서도 정 반대 방향으로 자신의 몸을 돌렸다.


"외투는 어디에 있나?"

"두고 온 것 같은데."


 그는 아지트로 돌아갈 엄두를 못 냈다. 이대로 돌아갔다간 자신이 연합의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보고 있는 것들을 늘어놓을 것만 같았다. 시시콜콜한 잡담이라면 또 모를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연합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진지하게 믿어도 문제고 안 믿어도 문제였다. 그는 이 상태로 돌아가나 술에 취해 돌아가나 맨정신이 아닌 게 똑같다면 맥주라도 마음껏 마신 뒤에 가는 게 여러모로 나을 거란 판단을 내린 지 오래였다. 만취해서 들어간다면 평소 자신의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오늘 제가 본 것들을 이야기해도 그런 식으로 받아 들이지는 않을거란 막연한 기대감은 덤이었다.


"사무소에 말인가? 하지만, 자네 자리엔 외투가 안 보이는 걸."

"여기말고, 펍에."


  물론,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한 변명거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아틀라티코 드라군은 구성원의 정보를 숨겼다. 연합의 첩보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믿을만 한 이야기를 가져왔지만 그곳은 쉽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들의 이야기는 아틀라티코 드라군이라는 집단 단위로만 들려왔고 거기에 속한 개개인의 정보는 라즈가 신뢰하는 이들도 좀처럼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트와일라잇에 클랜 관리소가 생기고 SPEAR가 맡는다는 소식이 트와일라잇에 퍼진 뒤에도, 그는 앤지에게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스페인 출신의 용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알게된 건 아론 덕택이었다. 평화의 시대, FAITH가 아론에게 신세를 졌던 적이 있어 본의아니게 알게된 이야기가 몇 있었던 것이다.


"출근하면 조노비치나 홀든이 들고 오겠지. 잠이나 자러 가자."

"그러지 말고 잠시 앉아 있겠나?"

"안 어지러운데. 대신 가져오려고?"


 그당시 그는 아론의 이야기와 자신이 겪은 그들을 종합해서 판단했다. 두 용기사는 방향은 달라도 별난 사람들이 맞긴 맞았다. 인간 관계가 매끄러운 인간상과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느 선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상점을 바라보지만 의무에 눈을 돌리지 않는 FAITH나, 괴팍하지만 전 세계의 모든 사람과 교류를 끊을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은 SPEAR나, 그정도면 결혼을 꺼릴 수는 있어도 필요하다면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책임질 식솔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준 안에서 별났다…….


"광장 회식이면 늘 가는 곳 아닌가? 대강 길을 알아."

"뭐 어때서. 걔네 나보다 출근 빨라. 내가 내일 조금 빨리 출근하면 된다고."


 …….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 지 알지만, 어쩔 수 없군."

"왜 그러는데?"

"자네의 물건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아."

"너답긴 한데……."


 아, 트리비아.


 그는 텅 빈 거리에서 연인에 대한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저런 것이 아니라고 해도, 어쩐지 그의 눈에 비친 FAITH는 자신보다 훨씬 더 헌신적인 연인이라도 된 듯 굴었다.


"싫은가?"

"그건 아닌데, 그냥."


 잠깐, 연인? 연인…….


"싫은 게 아니라면, 또 부탁할 거라도 있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라."

"금방 오겠네."


 그는 펍과 맥주를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펍에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하는 ACE, 웃음 소리가 호쾌한 VIGOR, 심지어 그 SECRETARY나 펍에 데려 오지 않는 STREAMER까지 끌어들여 머릿속에 담긴 두 용기사의 이미지를 어거지로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 과정에서 지금 돌아갔다간 회식이 완전히 끝나기 전 까지 SECRETARY의 맞은편에서 술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까지 떠올린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곧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멍청하게 바라만 보는것 보단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간신히 끌어내 광장에서 탈출했다. 그와중에 그는 순간적으로 누군가가 자신이 있던 자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착각일 거라고 생각하며 얼음길을 마저 빚어 그 위에 올라탔다.



"빈 손으로 안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함께 돌아오셨군요?"


 SPEAR가 자리에서 일어나 펍을 떠난 게 제법 이른 시기였던 덕택에, 사람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펍은 여전히 붐볐다. 제일 먼저 자신을 발견한 ATTRACTIVE에게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SECRETARY의 맞은편에 또 한 번 앉았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어 다시 들고 왔습니다. 회사측에 부탁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이리 줘."


 루이스는 별 말 없이 어깨에 걸쳐둔 옷가지를 맞은편에 건넸다. 약간의 해방감까지 느낀 그는 이제 마음 편해져선 긴장을 풀고 술을 마시는 게 옳을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지경이 되었다.


"내일 아침에 30분 쯤 빨리 출근해서 받아가거나, 아니면 FAITH가 올 거야."


 그리고 SECRETARY는 그 뒤에 말을 이어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를 다시 지옥 불구덩이로 쫓아냈다.


"불렀나?"

"들렸나봐? 바로 오네."


 뛰어온 모양인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빨리 펍에 도착한 FAITH는 잠시 시간을 들여 숨을 다시 고르더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SECRETARY에게 SPEAR의 외투를 받았다.


"ICE가 옷 주인한테 전해 주려다 못 찾았다고 다시 들고 왔지 뭐야."

"그런가? 헛걸음을 했군."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헛걸음을 하고 돌아왔다면 차라리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눈앞의 FAITH와 클랜 관리소에 앉아 있을 어떤 용기사의 관계를 알게 되는 것 보다는 두 사람을 찾지 못하고 뱅뱅 도는게 훨씬 나았다. 알고나서 드는 생각이지만, 박스는 며칠 뒤 전부 본사에 가져간다고 했으니 곧 연합의 정보원들이 라즈에게 알렸을 문제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걸세."


 이런 상황에서, 하필이면 FAITH의 억양은 평소 까칠한 말투의 SPEAR만큼이나 강했다. 그는 FAITH의 첫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방금전 광장에서 얼음길을 만들때 무시했던 그 감각을 다시 한 번 느꼈다. FAITH가 알고 있었다. 그것도 대상을 특정해 알고 있었다. 루이스에겐 등골이 섬짓해질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직접 말을 해볼 수도, 상황을 뒤집을 수도 없었다.


"온 김에 한 잔 하고 갈래?"

"고맙지만 사양하지. 내일 선약이 있어."

"뻣뻣하긴."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는 먼저 일어난다며 옷을 들고 펍을 나섰던 순간을 잊은듯 빠르게 맥주잔을 비웠다. 맨정신으로 견딜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지나간 하루 였다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펍은 여전히 떠들썩했고 FAITH는 그런 그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SECRETARY와 몇 마디를 더 주고 받으며 펍을 나섰다. 많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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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