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2018. 7. 3. 21:35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스페인 왕실 측에서 정말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용기사를 길러낸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세상을 구했다. 안타리우스가 세상을 판돈으로 내민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아틀라티코 드라군이 꼭 필요했고, 상황을 지켜보며 비공식적으로 회사를 돕는 선에서 그쳤던 그들은 최후의 전투를 눈앞에 두고 나서야 기사단을 파견하며 공식적인 참전을 선언했다. 덕분에 회사-연합 연맹 측은 극비로 강습 작전을 꾸릴 수 있었고, 로라스는 그 작전에 적격 판정을 받아 차출되었다. 이전부터 강습 성공을 전제로 하는 임무를 수행해온 그를 선택한 건 연합의 두뇌요 연맹의 참모가 된 토니 리켓이었지만 그는 결단을 내리기 까지 시간을 더 요구했는데, 강습 직후 일시적으로 모든 공격이 집중될 그를 안전히 탈출하도록 지원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로라스를 엄호하려면 그와 같은 아틀라티코 드라군 소속인 드렉슬러를 함께 투입한 뒤 그의 지원을 받도록 작전을 짜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란 건 모두가 알았지만, 그 드렉슬러는 납치 당한 토니 리켓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안타리우스의 강화 인간에게 테라듀로 심장을 꿰뚫려 사망한 뒤였다. 거기에 기존 임무와는 다르게 작전을 완벽하게 성공시켜도 작전에 투입된 인원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걸, 로라스는 작전서를 받아든 순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고 그 점 만큼은 안타리우스 조차 알고 있을 정도였으며 그 뜻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만에 하나, 동료의 죽음에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잠시 솟아 올랐다가도 오히려 드렉슬러의 죽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안타리우스의 샘플이 되지 않도록 사체를 직접 불에 태우는 모습을 직접 본 토니 리켓은 그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견서를 연맹 측에 직접 전달하기까지 했다. 토니 리켓에게는, 혹은 사이퍼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바로 지난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동료의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쥔 임무를 해내야 하는 사람이었고, 보란듯이 해냈다. 그의 마상창은 비능력자를 한순간에 변이시킬 정도로 농도가 짙은 안개를 흩뿌리던 장치의 코어에 꽂히며 전쟁의 끝을 알렸다. 그렇게 그는 모든 것이 걸린 순간 모든 것을 지켰다. 명예를 지켰고, 그 자신의 신념을 지켰으며, 무의미한 사상자가 더 나올 수도 있었던 위기 상황을 제 선에서 끊었다. 로라스란 인간에게도, 그를 둘러싼 세상에게도,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는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십 년이 지나 그때 그 전쟁의 기억이 역사로 지나갈 무렵,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다가 가문에서 성년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근 백 년전의 전생을 송두리째 기억하고 만 알베르토 로라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용기사시절 모든 기억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20세기를 살았던 알베르토 로라스의 결말이 그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든 순간 손에 쥐지 못한 단 한 가지에 사로잡혀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놓지 못했다. 한 번의 삶을 끝내는 동안 그 많은 것을 이루고도 단 한 가지를 놓친 그는, 선택했다.

 사무친 것이 있으니 다음 생에서라도 잡고 말겠단 집념을 매개로 한 사람의 인생을 기억 째로 영혼에 새기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 영혼에 새긴 모든 기억을 열어 전생에 쥐지 못했던 것을 쥔다. 때로는 선지자로, 때로는 전생을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혹자는 신의 은총으로, 혹자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바라보는 시선도 갈리지만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나타났다. 하지만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낸 사람들이 그 뒤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기억을 들고 다시금 태어난 알베르토 로라스는 스스로 제 길을 닦아 나아가기로 했다.

 그날부터 그는 단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바쁜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자신의 기억을 되짚을 때면, 자신의 감정을 한 가지 방향으로 말끔하게 끊을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이 되고 나서야 누군가를 손에 넣고 싶단 감정을 자각한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가도, 그 전에 자각했다면 말라 비틀어 졌을 거란 생각이 들때면 이런 상황이 된 것도 괜찮은 것 같다가, 이럴거라면 끝까지 모르고 죽는게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에 머리를 쥐어짜려 하면, 언젠가 제 곁에 서 있던 다정한 빛깔의 머리칼이 떠올라 가슴을 움켜 쥐어야 했다. 병인 듯 했다.

 아니, 쥐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한, 백 년쯤 전 부터 그랬던 것 같다.




생님 리퀘. 로라스가 드렉슬러 한정으로 달달한거 드렉슬러만 모르는 상황. 짧게 몇 번 업로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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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