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blin2017. 5. 16. 00:48

 


 오메가버스 중의 연작. 취향이 아니라면 지나가세요.



 남매는 은탁을 태운 차가 현장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선은 금세 도착한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임시로 주변을 통제해달라 요청하고 있었고, 이야기가 좋게 끝나 지원 인력이 도착할 예정이라는 말에 신을 찾았다. 은탁을 따라가도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선이 보게된 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었다. 신이 절제되지 않은 상태로 처음 세상에 나온 은탁의 향을 뚫고 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 석상에서의 김 신은 왕 여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중인 약혼자이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다. 


"정신 차려."


 그는 길바닥에 엎어져 있던 여를 은탁의 향 더미에서 건져 올려 등에 업었다. 이미 의식이 끊긴 여는 말이 없었다. 대신 은탁의 향에 이끌린 오메가로써의 본능은 건재했는지 그의 향이 점점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 이상 여를 은탁의 향에 노출시켜선 안 된다는 생각에 곧장 주변을 빠져 나왔다. 그의 주변에 여의 수행원들이 급히 다가갔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신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같이 가시죠. 저희쪽이 더 가까울 겁니다."


 그는 여를 은탁을 부탁한 병원과 같은 곳으로 데려갈 작정이었다. 여의 가문과 연결되어 있는 병원은 거리가 제법 됐고, 거기에 은탁이 알파로 발현한 이상 선과 배우자가 될 여가 익숙해져야 할 곳이기도 했다. 곧 여의 가문에서 보낸 차가 한 대 도착했다. 두 남매는 여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 애, 이번 시기 잘 넘기면 우리 가문 사람 되는 거지?"

"그래야지."


 그들을 실은 차가 막 구역 통제를 시작한 경찰의 배려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 나왔다. 


"입양 시킬거야?"

"그 애가 원한다면."

"알아서 해. 나도 이 사람 꽤 마음에 들었거든."


 선은 제 몸 쪽으로 여를 끌어당겼다. 두 알파의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제 향이 섞인 숨만 뱉던 여의 몸은 손길 닿는 대로 선의 품에 안겨들었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것도 상황을 볼 때 작용하는 알파나 오메가의 직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알파의 향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다는 욕심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신의 시선 또한 본능에 따른 것이어야만 했다.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서 호르몬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쌓아가면서 수월하게 본딩을 끝낼 미래를 부러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됐다. 그는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발현 하나만 기다려 왔던 은탁에게 더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발현했고 드디어 곁에 둘 수 있게 됐는데, 드디어 이 긴 냉전이 끝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는데 여기서 모든 것을 어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인생, 알 수가 없어서.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은탁은 눈을 떴다. 그녀는 공백에도 소리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부모를 모두 잃고 친척집에서 신세를 지며 여럿이 살아도 혼자 사는 것 같던 시절을 지난 뒤 재능을 인정받기 전 까지 혼자 자취하며 살던 은탁에게 공백이란 말 그대로 공백이었다. 그게 못내 외로웠던 그 시절에 지금 이 느낌을 알았다면 조금 더 행복하게 보냈을까 고민할 만큼,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그 공간이 너무 시끄러웠다. 이쪽에서는 머물다 간 사람의 향이, 저쪽에서는 얼마전까지 있었던 기계에 묻었던 땀내가 났다. 향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완전히 닫혀 있는 창문 너머 저 멀리서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까지 들려 때아닌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호출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것 조차 괜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그녀 자신에 대해 슬슬 짜증이 날 시점의 일이다.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세요?"

"너무 시끄러워요. 여기저기 향도 너무 강해서 머리도 아프구요. 어떻게 안 될까요?"


 그녀는 곧바로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에게 심정을 탈탈 털어놓았다. 간호사는 난감해 하면서도 미리 내려둔 진단 결과를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 설명했다. 우성으로 발현하는 바람에 모든 감각이 발현 전에 비해 지나치게 민감한 상태인데 첫 발현이기 때문에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지를 익히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며, 해결 방법은 환자 자신이 호르몬을 다루는 법을 알기 전까지 기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최대한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진짜 너무 힘들어요……."


 그녀의 고통의 기록은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기기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들에 둘러싸여 매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알파로써의 삶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특별할 것 하나 없던 것들 조차 매번 색을 바꿔가며 다가왔다. 모든 것이 특별했다.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든 것이 달랐다.

 그녀에겐 처음으로 맡은 향이 평생 뇌리에 짙게 남아 있을 것이었다. 알파의 향은 선의 것을, 오메가의 향은 여의 것을 가장 처음 접해 두 형질의 기준이 그 두 사람으로 잡혔다. 병실에서 기기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나 둘 감각을 여닫기 시작한 계기는 병실에만 있기엔 갑갑하다는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몸이 한결 괜찮아진 뒤 유리벽을 하나 두고 만났을 지언정 처음으로 다시 본 알파는 선이었다. 그 모든 순간에 신은 없었다.


"두 번째로 보는 건데도 벌써 오랜만이네요, 우리."

"써니 언니! 안녕하세요!"


 신이 없었다. 모든 고민의 근원이자, 사랑이고, 미래였던 사람이 없었다. 싸웠다지만 발현 전까지 은탁의 인생을 함께 걸어가던 사람이 없었다. 전액 장학금을 조건으로 간신히 돈을 마련해 들어갔던 대학교에서 처음 만나, 실은 처음 본 순간부터 반했었다고 말하던 그의 모습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고통에서 해방된 순간 먼저 떠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퇴원한 뒤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라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나마도,


"다른건 아니고, 몇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입양 관련해서 오빠랑 말은 해 봤어요?"

"네?"


 발현 후 그녀가 신을 떠올린 그 순간 조차 선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한참은 미뤄졌을 것이란 점이 못내 쓰렸다.




 신은 신대로 바빴다. 사고 당일, 그는 은탁과 여, 두 사람을 각각 한쪽 끝과 반대쪽 끝 병실에 격리 조치 해뒀다는 보고를 받은 뒤 집에 돌아갔다. 마음같아선 병실을 지키고 서 있어도 부족했지만 형질을 이유로 격리 병실에 들어간 지금, 알파인 그는 두 사람이 입원한 층에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는 병원 신세를 질 두 사람의 뒷처리를 먼저 해 두는 게 낫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나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제 방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버렸다. 여를 향해 걸어가는 길 내내 은탁의 향을 맡았지만, 제 연인의 향이라는 걸 알면서도 같은 알파로써 느끼는 약간의 거부감 말고는 그 어떤 설렘도 느끼질 못했던 제 자신에게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탓이다. 분명 은탁의 발현은 기다림의 끝을 알리는 지표였다. 부쩍 어색해졌던 두 사람의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조바심이 나지.


 그는 한참동안 닫아뒀던 서랍을 열었다. 자료 더미로 가득 차 잘 열리지도 않는 걸 억지로 연 그는 안에 있던 자료들을 전부 꺼내 책상 위, 제 앞에 전부 펼쳐놓기 시작했다. 키보드까지 침범하며 책상을 가득 메운 것 모두 그의 필기로 공백 하나 없었다. 알파 형질 발현자 행동 분석 보고서 : 인간 관계(III), 알파 형질 발현자-형질 비 발현자 간 관계 지속성에 관한 연구, 알파 형질 분석 : 성향 변화를 중심으로, 3차 성징기 : 형질 발현자 간 사회 관계망에 관하여, 기타등등, 기타등등.


"왜 없지?"


 신은 그렇게 소중히 모아뒀던 종이더미를 전부 헤치며 무언가를 찾았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찾아 헤메도 막막하기만 했지 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는 자료는 그 더미 안에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알파와 베타의 사랑이결국 형질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건지에 관해 의뢰를 맡긴 알파, 혹은 베타가 없을 리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그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제 자료 더미에서 나오지 않는 건, 아마 연구자가 없었던 게 아니라 이미 나와있는 연구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신 자신이 의도적으로 자료를 넣어두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알파도 결국엔 인간이었다. 실수 할 줄도 알았다. 제가 보고 싶지 않은 건 애써 모른척 할 줄도 알았다. 그러니까 그는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형질 차이 같이, 누구 한 쪽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사랑이 끝날 수도 있다는 걸, 은탁과 자신의 관계도 그렇게 끝날 수도 있다는 걸.

 신은 열린 서랍을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이젠 냉전 같은 단어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날이 오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녀만 괜찮다면 어떻게든 붙잡을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그녀를 보고 싶었다. 이야기를 해야 했다. 까딱하면 뒤틀릴 지 모르는 관계 속에선 당사자 간의 대화만이 돌파구였다.


 그러니까, 소식이 들어 와야 말이지.


"아직도 별 소식 없어?"


 신은 며칠째 오지 않는 연락만 기다렸다. 벨소리가 들릴 때 마다 화면을 바라봤지만 항상 신이 원하는 이름들만 제외하고 찍혔다. 은탁의 첫 발현에 대한 참고인으로 그를 소환될지언정 그녀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은탁이 아닌 여의 상태를 말하기 위해서라도 병원 측에서 연락이 왔다면 기대라도 한 번 했을텐데, 이틀동안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젠 슬슬 불안할 지경이었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몸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그는 더이상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빠한테 뭐 안 갔어?"

"특별히 없었는데."


 본가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나란히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선의 입장에서도 은탁의 상태는 중요했다. 은탁이 정신을 차리고 나면 물어볼 게 두 가지 있었다. 입양 절차가 필요한지, 발현하기 전 처럼 신과의 결혼 계획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지. 두 가지 모두 3차 성징기에 들어간 은탁에게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두 사람 다?"

"병원에서 아예 연락이 안 왔어."

"이상한데. 슬슬 전화 한 번 올 때 안 됐어?"


 바로 그 순간에 연락이 온 건, 어쩌면 운명의 한 단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은탁이 좀 괜찮아 졌대. 면회 가능한가봐."


 신에게 온 연락은 업체에서의 연락이었다는 것과 선에게 온 연락은 병원에서의 연락이었다는 것, 그로 인해 신은 은탁이 깨어났다는 걸 알면서도 병원과 정 반대 방향인 인천에 먼저 들러야 하는 상황이 나온 것, 그 사이 은탁을 보러 간 선이 입양에 관련해 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은탁이 깨닫게 되면서 결국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두 사람의 인연이 마침표를 찍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


"같이 갈래?"


 그 모든 일들이 단 한 번의 엇갈림으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신이나 선이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에게는 제 세계의 향방을 가르는 어떤 날이 하루쯤은 있는 법이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고민해왔던 많은 것들이 바뀌는 순간이 한 번 쯤은 오는 법이다.


"……부탁 좀 하자. 나 갈 곳이 좀 있어서."


 하필 은탁의 의식이 돌아온 날에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 뿐이다. 신과 은탁에게는 분통을 터뜨릴만큼 불공평한 일이었다. 몇 번의 위기를 함께 헤쳐온 둘의 사이가 선택 한 번으로 끝나고 마는 거라면 차라리 관계를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알파건 베타건 오메가건, 결국은 사람이라서.



"설명해 줄게요. 길어질 거니까 은탁 씨도 거기 앉고."

"아, 네."


 선은 옆에 있던 의자를 하나 끌어와 앉았다. 맞은편의 은탁도 얼결에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의자에 앉았다. 


"알파건 오메가건 발현을 한 사람은 두 가지를 꼭 확실히 정하고 퇴원해야 해요."

"두 가지요?"

"뭉뚱그리면 한 가지로 말 할 수도 있고. 그게 나아요?"

"네! 한 가지가 낫죠! 편하구!"


 발현을 해도 사람의 성정이 전부 변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은탁의 경우 발현 전 성정이 향의 방향성을 결정할 정도로 전후관계가 뒤바뀐 사례이기도 했다. 선은 연하게 웃었다. 


"가족 관계를 좀 정리하고 나가야 편해. 성을 바꾸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야."

"그럼요? 뭘 결정해야 하나요?"

"입양 여부랑 결혼 여부?"

"에이, 입양되면 성 바꿔야 하는 거 아니예요?"


 은탁은 속았다는 듯 장난스레 둘 사이를 지키는 유리를 툭 쳤다. 향조차 넘어가지 못하도록 특수 처리가 끝난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동 한 번 없는 벽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은탁 씨보다 훨씬 조절이 힘든 알파도 그 벽은 못 뚫어요.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고."

"와……."

"아무튼, 3차 성징 이후에 입양 절차를 밟는다면 성을 바꿀 필요가 없어요."


 그녀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입양이라면 한 가족이 되는 걸텐데 성씨를 바꾸지 않고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지도 궁금했고, 실제로도 사람을 입양하겠다고 찾아온 가문에서 그런 걸 용납할지도 궁금했다. 그간 은탁에게 신과 선이 태어난 가문과 같은 곳들은 무척 권위적으로 비쳐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되는 거예요? 가문에서 그런 거 안 좋아할 것 같은데."

"별 상관 없어요. 중요한 건 성씨나 핏줄이 아니라 형질이니까."


 하지만 선이 실제 제가 겪어온 이야기들을 하나씩 할 때 마다, 은탁은 제가 했던 생각들이 대부분 베타의 편견에 기반한 것이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분명 권위적이긴 한데 베타의 시점에서 바라봤을 때와는 또 달랐다. 형질 뿐만 아니라 온갖 잣대를 대며 까다롭게 따질 줄 알았건만, 그냥 형질 하나면 모든 게 프리패스라는 식의 설명이 돌아왔던 것이다.


"형질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중요하지. 은탁 씨가 오빠랑 결혼하겠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이유도 형질 때문이면서?"


 그렇지만 은탁은 어딘지 한 구석이 허했다. 어느 쪽이건 발현만 하면 되니 그때까지만 참자던 신, 어차피 발현할테니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거라던 여를 알고 있는 그녀조차 막상 알파로 발현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신의 존재를 떠올리지도 않고 살았던 며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베타였던 시절부터 신과의 관계는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둘만 아는 불안감이었던 데다가 안정적이질 않으니 역으로 사랑이 더 오래가기도 해서 전화위복이 된 적도 많다. 하지만 불안함까지 사랑의 땔감으로 삼았던 사이 마저 발현 한 번에 어느새 흩어지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궁금한 거라도 있어요?"


 그건 그녀에게 적잖이 충격적인 일이었다. 한 술 더 떠, 이제는 신과의 관계가 우리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발현을 하면, 그 전에요. 그러니까 베타였던 시절에 쌓았던 인간 관계가 변할 수도 있나요?"


 그렇기에 그녀는 선의 대답이 자신을 구원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발현 초기에만 혼란스러울 뿐 시간이 지나 좀 더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간다면 당신이 베타였던 시절에 알던 그 관계 그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 한 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이번 위기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사람 나름?"

"네?"


 그러나 선이 내놓은 대답은 은탁의 기대를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발현이란 거, 생각보다 드문 일이예요.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일인 것도 맞고."

"그렇긴 하지만……. 발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까지 다 날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기억은 그런데 감정은 몰라요. 괜히 결혼 여부를 물어 보는 게 아니야."


 세상 사람 대부분이 베타잖아요. 3차 성징기 안 거치고 잘만 살다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난 곧 알파 아니면 오메가가 될 거니까 결혼은 보류할 거라고 하는 베타, 본 적있어요? 선은 은탁의 마음 속 틈새에 제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휙휙 던져댔다. 그러다 한 순간, 한 번 크게. 


"그래도 이미 결혼한 뒤에 발현하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산 세월도 있고, 자식이 있으면 또 어떡해요."

"뒤늦게 발현한 사람들 중에 3차 성징기 잘 마치고 나서 가정 유지하는 사람.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백에 하나야. 알파와 알파 간 본딩이 될 확률과 같은 그 수치로, 선은 신과 은탁의 사이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 




Posted by _z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