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명계는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거쳤다. 어떤 감시관은 부장으로 승진했고 어떤 차사는 죗값을 다 치러 퇴사했다. 빈 자리는 죗값을 치를 마음이 생긴 영혼이 채웠다. 여를 비롯한 차사들에게는 고난의 시기였다. 일에 치여 덮어두었던 과거를 다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원 배치가 끝나자 마자 떨어지는 소집령이 문제다. 내용상으로야 정복 차림으로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면 견습 차사들이 자리를 안내하고 추후 일정을 설명하는 그냥 그런 소집이다. 다만 인사개편 직후의 소집령은 차사들에게 술잔 꺾는 자리로 유명했는데, 뒷맛 깨나 씁쓸할 저승사자 처지를 잊을 만 하면 떠올리게 새겨둔 신의 안배가 술을 불렀고 그네들은 술을 마다하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저 선배도 갔대?"
부어라 마셔라 달릴 만 한게, 차사들은 소집령에 전부 응했지만 만석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퇴사자의 자리 몇은 비었다. 떠난 이는 말이 없지만 남은 이는 느끼는 게 많은 자리다. 그 장도가 독해 기워낸 삶을 사는 차사들조차 경각심이 들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자리이기도 하다.
"어."
이번 소집 때 여는 제 근처, 한 기수 위 선배인 차사 자리가 빈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몇 백년 전에 서류 처리 제대로 못 한다고 저를 볼 때 마다 혀를 차던 차사였다. 그날 여는 뒤풀이 겸 친목 도모 술자리에서 붓고 붓고 또 부었다. 한참 뒤에 그런 그를 데리러 온 도깨비는
"기임, 신?"
하며 저를 부르는 연인을 보며 눈 크기를 키웠다. 쟤도 취할 줄 알아? 그와중에 한 테이블 어치 시꺼먼 정장 패밀리의 시선이 한 점에 모였다. 신은 망자가 될 뻔한 이들에게 건넨 샌드위치 갯수를 떠올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죄인이 된 것 같아 그들의 시선을 피하며 여의 곁으로 제 긴 다리를 휘적휘적 옮겼다. 그나마 여 바로 옆에, 여 말고도 저와 안면을 튼 사자가 앉아 있었다. 여의 후배라던 이였다.
"아이구! 안녕하심니가!"
발음은 온전하지 못했지만 신을 알아볼 정도의 정신은 건사한 듯 했다. 신은 고개를 까닥였다. 테이블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누과 불러쒀?"
"저요옵!"
여는 손을 번쩍 들었다. 우워어어! 놀리는 음성이 괴성이 된지 오래였지만 신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잡아두느라 혼났다. 약속한 시간을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차사를 기다리다 다음 날 쪼일 각오를 하고 전화를 걸었다. 답잖게 저를 부르기에 한걸음에 달려왔더니, 제법 보람찬 하루가 기다렸던 것이다. 그는 감격한 나머지 어디로든 데려가 무슨 일이건 치를 생각을 하며 여를 부축했다. 여는 웅얼거리며 그에게 뭐라 중얼댔지만 신은 자그마한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런 그가 그대로 몸을 일으켜 안아들려던 찰나, 여가 번쩍 눈을 떴다.
"소개."
정신을 차린 줄 알았더니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저를 소개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신은 술 한 모금 안 걸친 제가 다 알딸딸해지는 듯 했지만, 이런 여는 또 이런 여 대로 귀여웠으므로 조금만 더 있다 갈까 싶어 잠깐 자리에 앉혀 제 어깨에 여를 기댔다. 여는 민재에게 손가락을 쭉 펴 삿대질했다.
"네가."
그런 여의 주문아닌 주문에 민재는 근엄한 표정, 비장한 태도로 벌떡 일어섰다. 양념만 묻어 있는 앞접시 몇 개가 앞으로 엎어졌다. 괜찮겠지. 신은 싸하게 식은 여의 손에 제 열기를 살살 옮기며 시선을 옮겼다. 곧 그는 제 안일함을 곧바로 후회해야 했다.
"슨배님네 소문! 무스어엉한, 그, 뭐야 그거. 독개뷔? 두왜심니돠!"
민재는 제 위의 전등에 인사했고 주변에 앉아 있던 차사들도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쟤네 둘 만 그런것도 아니고 다 저 모양이야? 신은 저도 모르게 검을 꺼내야 하는지 상황을 저울질했다.
"돗개비?"
"예에에."
독개뷔도 아니고 돗개비도 아닌 도깨비는 모든 의지를 잃었다. 그는 연인만 데리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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