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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버님의 용사마왕(https://twitter.com/chiznoguri/status/581138750043885568)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3차창작(https://twitter.com/Faithpear_cp/status/581661903669194753) 관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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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왕성에는 용사님이 산다
마왕들은 대대로 성 하나를 물려받았다. 성은 수도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심심하면 침입해오는 인간들이 제 몸에는 흠집 하나 못 내는 주제에 몇백 년 동안 가꿔온 도시는 잘도 부수고 다니는 걸 못 견뎌했던 다섯대쯤 윗 마왕이 수도를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그 마왕성에는 퍽 이질적인 손님이 한 개체 있었다. 분명 그는 마왕을 토벌하러 왔다고 했으니 손님이라고 칭하기는 민망한 구석이 있었으나 마왕이 직접 제 손님이라고 공언해 두었으므로 다른 이들은 마왕이 안 하던 짓을 한다며 신기해 할지언정 그의 출신성분에 대해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응? 용사. 하자. 내가 낳으면 되잖아. 응?"
"……."
그것이 인간일지라도 말이다.
마왕 다리우스를 토벌하기 위해 마계에 들어왔던 알베르토 로라스가 손님 신분으로 마왕성에 머무르게 될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현 마왕 또한 그의 한 마디만 아니었어도 상대해주는 척 하다가 죽이거나 돌려보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 이토록 정교한 기술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네.
하지만 말 한 마디에 홀랑 넘어가버린 마왕은, 그를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무구를 막무가내로 선물한 것도 모자라 좀 더 머물다 가라며 이름도 모르는 한 인간을 살살 꼬드기기 시작했다.
마계에 그의 이름을 아는 존재는 없었다. 그는 용사 아니면 손님으로 불렸다. 그는 제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그래왔듯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크들이 성에 찾아와 소나 돼지 따위를 납품하고 가면 장난끼많은 임프들이 스테이크를 만들어 식탁에 내 놓는 동안, 그는 말끔히 씻고 갑주를 손질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말하는 무구가 마왕을 무자비하게 깨웠다. 그때까지도 정신 없이 자던 마왕은 그때서야 비적비적 일어나 손짓 몇 번으로 갑주를 두르고 식당에 내려와 금화를 던졌다(임프들이 그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했다. 다행히 마계의 가축은 인간들이 기르는 것과 같아 식사는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로라스에게는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마왕은 한 마디 덧붙였다.
"구성원이 주식이었으면 넌 벌써 죽었어."
용사, 그러니까 로라스는 돼지고기를 한 점 씹으며 생각했다. 왜 아직도 여기 있지? 사악한 마왕 다리우스는 이미 죽은지 오래였으니 진작 고국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지금 제 꼴을 보면 영락없는 손님이다. 그것도 마왕의. 기한도 정해진 바 없이 계속 머무르고 있으니 여관에 잠시 들른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없었다. 심지어 넓게만 보였던 마왕성이 이제는 발 가는대로 움직여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 공간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가?"
"당연하지."
더 큰 문제는 마왕에게까지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왕은 가끔 로라스를 제 공방에 불렀다. 그의 공방은 그의 모든것이었지만, 마왕이 되는 바람에 공방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그는 마왕성 안에 포탈을 만드는 초강수를 뒀다. 저 포탈을 타고 누군가 자네를 죽이러 오면 어떻게 하나? 마왕은 삼 초도 안 되서 대답했다.
"죽인다고 죽는 존재가 아니라서."
여지껏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다.
"궁금하냐?"
"흥미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군."
필멸의 존재에게 영원을 산다는 것은 까마득하게 먼 일이다. 마왕은 때때로 그의 식견을 마음껏 풀었는데 가끔은 그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그 모든 것이 나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는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너 오십은 됐냐?"
"멀었네."
"궁금할 만도 하네."
마왕은 그렇게만 말했다. 신나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던 평소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
포탈을 타고 마왕성으로 돌아온 로라스는 홀로 몸을 단련하다가 생각에 빠졌다. 그런 그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마왕의 권능을 쓰던 모습이나 장인으로서의 책임감 같은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팔십을 넘긴 노현자가(물론 마왕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갓 성인이 된 청년들을 바라보는 듯한, 혹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측은함은 아니었다. 차라리 부러움에 가까웠다. 무지를 동경하는 이를 보는 것은 또 처음이다.
문득 로라스는 그가 보는 자신이 궁금해졌다. 손님이 아니라 실은 자신은 그의 눈에 한낱 미물일 뿐이고, 미물이지만 자신의 작품을 인정했으니 한순간의 변덕으로 살려두고 지켜보는건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마왕성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
한참 합금 비율을 적어내려가던 마왕은 샐쭉 웃더니 뻣뻣하게 서 있던 로라스의 품에 달려들었다. 그는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그의 엉덩이를 단단히 받쳤다. 마왕은 냉큼 그의 손 위에 앉아 말했다.
"그럼 나랑 자자. 내가 알도 낳아줄게."
"?"
"최강의 자손을 만들자고."
마왕의 기행이 하나 더 시작됐다. 로라스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시작인가 싶어 그냥 내버려두었다. 가끔 그의 이름을 딴 합금을 납품해달라며 사정하러 오는 드워프들이 귀띔해준 이야기였다. 저 놈은 흥미를 꺼뜨리기 전엔 무슨 짓을 해도 소용 없으니 그대로 둬. 눈으로 보기엔 제 키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종족이었으나 곧 로라스는 그들의 지식에 탄복했다. 과연, 눈에 띄게 실망하는 모양새로 몇 일을 보내더니 곧 흥미를 버리곤 무구를 강화하느라 여념없는 마왕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마왕. 또 찾아왔다."
"돌려보내."
마왕은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로라스는 바깥의 드워프들에게 고개만 저어보였고, 실망한 드워프들은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다리오나이트라고 했던가?"
"엉."
"다른 이들에게 제조법을 풀 생각은 없는 것 같군."
"풀 거야."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이 아닐 뿐이지."
"그럼 저 자들에게 이유라도 알 수 있게 해 줘야지."
"노친네들도 알아."
"알면서도 늘 찾아온단 말인가?"
"저 영감쟁이들은 촉매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거거든."
로라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보기엔 자네의 다리오나이트는 이미 충분히 놀라운 합금 같았는데."
"당연하지!"
마왕은 제 뿔을 벅벅 긁었다. 그와중에 조금 뿌듯했는지 로라스를 향해 몸을 돌려 제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족해. 다리오나이트는 꿈의 합금이 될 거야."
로라스는 어린 시절 양성소에서 배운 전설의 광물을 떠올렸다. 부서지지 않는 광물은 꿈의 광물이 아니라 재앙의 광물에 가깝지 않을까. 로라스는 신을 믿지만 인간의 불완전함 또한 알고 있었다. 파멸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파멸을 겪지 않고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희생을 떠안는 것도 퍽 슬픈 일이다.
"부서지지 않는 광물을 말하는 거라면, 그건 꿈의 합금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군."
"아다만티움 말하는거냐?"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주가 쩔겅거렸다.
"그건 꿈의 합금이 아니지. 무식하게 안 부서지기만 해선 아무것도 못 할거 아니냐."
"자네의 합금은 다르단 말인가?"
"곧 그렇게 될 걸. 다리오나이트는……."
마왕은 씩 웃었다.
"의지를 따르는 합금이 될 거거든."
로라스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 충격에 휩싸였다. 파멸, 희생, 성장, 그 모든 것을 사용자의 의지에 맡길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꿈의 합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 나 한 개체의 의지가지곤 부족하더라 이말이야."
"그들도 이걸 알고있다고 했나?"
"그래."
그는 그제서야 드워프들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가면서 그의 공방에 들렀다 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래서야, 입단속은 아무도 하지 않았는데도 같은 대장장이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그러니까 먼저 가 있다가 육포나 좀 들고 와."
마왕은 자신의 세계를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바지마왕이라더니, 실로 그는 왕이 맞았다.
처음으로, 로라스는 그런 신념을 가진 존재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면 어떨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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