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레님이 의뢰해주신 커미션입니다.
* 로라드렉(로라스x드렉슬러 // Cyphers).
* 대담(https://twitter.com/Faithpear_cp/status/570544391460298752)기반 이야기.
* 3500자 커미션(실제 : 3634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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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모처럼 시간이 생기자마자 두 사람은 서로의 시간을 묶었다. 연락을 취한 뒤 예약까지 전부 처리해놓고 전화를 끊은 게 벌써 며칠 전 일이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한 공원 앞에서 만난 둘은 늘 만나는 사람인데도 공연히 기뻐 웃음 짓고는 보급품이 아닌 음식으로 식사를 했고, 부른 배를 문지르며 숙소에 들어와선 한탕 진하게 하고 나니 모든 감각이 무뎌져 지금은 컴컴한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존재하고 있었다.
"로라스."
"음."
근래 들어 가장 느긋한 시간이었다. 삶을 누리고 있다, 로라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교접이나 교전은 삶을 알게 했지만, 순간 순간을 온전히 누리기엔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흘러갔다. 쾌락에 절어 울음보를 터뜨리는 연인의 모습이 특히 그랬다.
"몸 좀 돌려봐."
로라스는 천천히 몸을 옮겼다. 사그작, 시트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드렉슬러의 눈에 그의 눈빛이 스며들었다. 그는 말없이 드렉슬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드렉슬러는 감길듯 말듯 한 두 눈을 그대로 두고 낮게 웃었다.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로라스는 그의 곁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안정감을 느꼈다. 침묵이 그들을 쉬게 했다. 드렉슬러는 시간을 빠르게 보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으나 이런 고요함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같아."
대뜸 그가 말했다. 이제 그는 로라스의 품에 안겨 눈을 감고 있었다. 로라스는 조금 내려간 이불을 그의 어깨 위로 올려주었다. 크리스마스란 여러 의미가 있는 날이지만 다리오 드렉슬러 한 사람으로 한정한다면 그가 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는 몇 안 되는 날, 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었다. 평이한 날에는 그의 입에서 절대로 나올 일 없는 단어였기에 로라스는 조금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평소보다 배로 몰아친 게 못내 거슬린 것일까?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
드렉슬러는 그의 몸에 입을 맞췄다. 그보다 조금 더 탄탄한 몸이 그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건 두 사람 모두 같았지만 타고난 것 까지 바꾸는 건 지금와서는 바꾸기 어려워 진 것도 사실이라, 드렉슬러는 그 사실에 대해 절망하는 대신 제 것으로 만들어 마음껏 누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저보다 여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명왕의 양녀 나이대 쯤? 그때는 이미 골격이 잡힐만큼 잡혔을 시기고. 드렉슬러는 제 몸을 둥글게 모으며 시곗바늘을 조금 더 감았다. 몸이 조금 땡겼다. 즐길 때는 좋았는데 지금 와서는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긴 글렀군. 괜시리 약이 올랐다.
"쯧."
"드렉슬러?"
"좀 억울한데."
"무엇이?"
훌륭한 조언을 하는 이는 우선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을 줄 알면서도 그들의 인생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로라스는, 당연하게도 드렉슬러의 몇 안 되는 조언자가 되었다.
"물 꼬맹이들 나이대 쯤엔 너도 좀 물렀을까 싶어서."
로라스는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말했다.
"지킬 이가 있는 이는 무를 수가 없지."
"허."
드렉슬러는 그의 대답이 어떤 방향일지 이미 알았다. 그래도 약오르는건 어쩔 수 없었는지 퉁명스럽게 툭 뱉었다.
"네가 침대에서 동화 찌끄래기나 듣고 있을 때 말이다, 난 가정교사한테 라틴어 배우고 있었다?"
"그 사람……. 삼 년도 안 되어 쫓겨났다고 안 했던가?"
"당연하지. 꼬맹이 다리오보다 더 멍청한 인간한테 돈 낭비 할 이유 없잖아?"
드렉슬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의 직설적인 성격이 그의 진가를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걸 익히 아는 로라스는 가벼이 한숨지었다. 드렉슬러 또한 로라스의 굽힐 줄 모르는 태도가 극복할 필요 없는 시련을 만든다고 생각했으므로, 두 사람은 연인의 신세 걱정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신세였다.
"이런, 잘못하면 이 나도 자네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르겠군."
"내가? 너를?"
그는 별 말을 다 한다는 듯 대답했다.
"그땐 내가 멍청해진거고."
두 사람은 실없이 웃었다. 그러나 장난스럽게 꺼낸 이야기는 나른함에 가라앉아 있던 두 사람의 머리속을 현실로 채워나갔다.
"멍청한 다리오 드렉슬러라."
"잘 상상이 되지 않는군."
"내가 오죽 천재여야지."
능구렁이처럼 넘어갔지만 그는 어지간히 끔찍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드렉슬러는 그것 또한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자신은 여전히 전쟁터에 있기 때문일 터다. 지금처럼 인간성을 끊임없이 시험받는 곳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종래에 저 한 사람 쯤 멍청해지는 게 그리 큰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거니까 하는 말인데."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알베르토 로라스는 과분할 것이다.
"널 버릴 정도로 멍청해지면 네가 먼저 날 버리는게 더 낫겠지."
드렉슬러는 언젠가 홀로 내린 결론을 연인에게 전했다. 두 사람 다 행복할 수 없다면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야지. 되뇌였으나 곧 로라스는 그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깜짝 놀란 드렉슬러는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귓가엔 확신과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걸세."
그는 제가 깨문 어깨를 살살 핥아 내려갔다. 저를 두고 홀로 떠나가도록 풀어줄 것이었다면 애초에 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드렉슬러는 제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비볐다. 나름의 사과였다. 그가 로라스에게 먼저 안겨드는 일은 흔치 않았으므로 그는 별 수 없이 드렉슬러에게 입맞추며 그를 용서했다. 내용은 영 아니었지만, 그는 드렉슬러의 진심 한 조각을 본 대가인 셈 쳤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조금 기뻤다.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할 그의 이야기를 또 한 번.
잉글랜드에서 저만큼 연인의 이야기를 잘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만족할 법도 한데 그에 대한 것은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쌓여온 연인의 이야기도 전부 다 알 수는 없는데, 앞으로 펼쳐질 그의 인생까지 생각하면 끝이 없었다. 로라스는 그 모든것이 욕심인걸 알면서도 한 조각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로라스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까마득했다. 자신이 예전부터 바라던 명예로운 삶에 그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지, 지금처럼 살아갈 수는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갈림길에 선다면 그는 결국 명예가 부르는 길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드렉슬러 또한 그런 그를 존중할 것이다.
"그리고, 드렉슬러."
하지만 이제 로라스는 갈림길을 생각하기 이전에 두 가치가 함께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무한한 영광과 경애받아 마땅한 연인이 함께하는 그 곳에서 함께하는 삶. 비가 내리는 가로수 길을 함께 걷다가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삶. 지금과는 조금 다른 느긋한 삶이 어느덧 염원이 된 것은 순전 연인의 공이다. 정작 드렉슬러는 그런 삶을 심심해 못 견뎌 할텐데도.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그는 드렉슬러의 뒷목을 살살 쓸었다. 잘 마른 머리칼이 손끝에 스쳤다. 그는 조금 더 뒷목을 쓸다가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곤 몸을 일으켰다. 연인의 온기가 멀어지는 느낌이 싫어, 드렉슬러는 허공을 더듬어 로라스를 찾았다. 그는 이제 드렉슬러의 바로 위에 있었다.
"알베르토?"
그대로 그는 몸을 바싹 붙였다.
"지금 보여줄 수도 있는데."
어둑한 방, 드렉슬러는 보일리 없는 그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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