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ission2015. 3. 22. 03:14

* 소르다님이 의뢰해주신 커미션입니다.

* 로라드렉 (로라스x드렉슬러 // Cyphers)

* 로라스 사후 그의 기억을 이식받은 클론 로라스(사실을 모름)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드렉슬러.

* 3500자 커미션 (실제 : 4071자 내외)

* 의뢰인께 전달된 3/22일에서 15일이 지난 4월 6일부터 완전공개됩니다. 

* 4월 6일 00:07 공개처리 되었습니다.



Acceptance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세상 많은 이들에게 지탄받을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 세상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운운할 것이다. 한편 제 말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얼간이들은 청탁하는 이와 잡아들이러 찾아온 이들로 분류되었다가, 제 연구실 앞에서 다시금 섞여 산이 될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큰 의미가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가끔은 같은 종족이라는 것 조차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아둔하게 구는 이들의 수군거림은 의미가 없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지난 삼십 여 년간 어찌저찌 섞여있을 수 있던 건, 자신의 이상이 그네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 별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것을 잃은 지금, 이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그 연구실 안에는 알베르토 로라스가 사랑해 마지 않는 연인이 있었다. 간혹 그의 작품이 세상을 놀라게 할때면 한껏 떠들썩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구실 앞은 조용했다. 며칠밤낮을 연구실로만 출근하던 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로라스는 업무가 끝나자 마자 달려왔고, 는 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한 번 가다듬고는, 구두코로 바닥을 툭툭 두드린 뒤 손을 들어 노크했다.

"미안하네, 렉스. 오래 기다렸나?"

"들어와."

 그는 문을 열었다. 드렉슬러는 등돌린 채 종이 몇 장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로라스는 그런 그가 익숙하다는듯 천천히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의 온기가 좋았다. 

"무슨 날인지 잊지 않았겠지?"

"그래."

"옷 갈아입고 나오게."

 드렉슬러는 그의 볼에 입을 부볐다. 사랑이 그조차 바꿔놓은 것인가, 로라스는 조금 의아해했지만 곧 다시 나온 그와 함께 연구실을 나섰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본국만큼 따스한 공기는 아니었으나 적응하고 나니 나쁘지 않았다. 연인이 함께하는 한, 조금 찬 공기는 서로의 체온으로 덥히면 그만이었다. 잉글랜드에서 업무를 시작할때까지만 해도 함께 길을 거닐 수 있는 연인이 생기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 삶이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또한 그랬으면 바랄 것이 없다고, 로라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베르토."

"음?"

"난 이기적인 놈이야."

"그렇지 않아."

 드렉슬러는 발걸음을 멈췄다. 로라스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간혹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로라스는 연인의 몸을 돌려세운 뒤 양 어깨를 제 손으로 꽉 잡았다. 드렉슬러의 눈에 비친 그는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자네는 자네야."

 드렉슬러는 그런 제 연인이 좋았다. 이런 당신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말할 수 없을 감정이 치솟아 저를 강타했다. 이 상태에서 그를 마주했다가는 할 말 못 할 말 안 가리고 우수수 쏟아낼 것만 같았다. 드렉슬러는 제 어깨를 잡은 그의 손을 내려준 다음, 그의 등 뒤로 다가가 제 고개를 묻어버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드렉슬러?"

 그는 조금 놀란 듯 했지만, 곧 몸을 돌려 드렉슬러를 마주 안았다. 연인의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낫느라 고생 많았다."

 로라스는 멋쩍게 웃었다. 제 3차 능력자 전쟁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창룡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그는, 대 수술을 받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회사, 드라군 가릴 것 없이 검룡을 포기할 때, 드렉슬러는 온갖 방법을 수소문 하며 두 달이 넘도록 밤낮없이 그를 기다렸다고 했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그럴 엄두도 내지 못 했겠지. 모두 자네 덕분이야."

 기적처럼 그는 정신을 차렸다. 각력 강화 능력자답게 신체 회복은 빨랐다. 대신 그는 끊이지 않는 정신적인 압박을 견뎌내야 했다. 버텨야 하는 로라스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드렉슬러,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로라스는 이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는 이 고통을 드렉슬러 한 사람이 전부 짊어지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알면 다음부터는 그런 짓 하지 마라."

 그는 딱잘라 말했다. 거절될 것을 알면서도 그리 했다.

"거절하지."

 대답을 듣자 마자 그는 말 대신 로라스의 머리에 냅다 꿀밤을 먹였다. 로라스는 머리를 문지르며 

"그새 손이 많이 매워졌어."

 가볍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발언은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다. 대신 로라스는 그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웬일이냐? 좋은 날 아닌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이기도 하고. 작은 골방,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 그는 행복했다.


 삶은 곧 전쟁이었다. 장소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한 그곳은 전쟁터였다. 그들은 한 순간의 실수가 몸을 날려버리는 전쟁터에서 살았으므로 조금 더 직설적인 개념이기는 했다. 드렉슬러는 그의 재활을 도우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어떻게 살린 그인데 다시 죽음을 전제하는 곳에 내보내야 할까?

"갑옷은 좀 어때."

"잘 맞는군."

 물론 드렉슬러는 답을 알았다. 그의 신념은 투쟁으로만 증명할 수 있었으므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는 다시 이 곳에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자네는 좀 어떤가? 몸이 많이 굳진 않았나?"

"날 뭘로보고 그러냐."

"자네답군."

 다시는 널 떠나보내지 않는다.


"드렉슬러? 내 말 들리나?"

 다리오 드렉슬러는 천재였다. 다른 이들에 비해 비상한 재주와 두뇌를 가진 이였다.

"안 죽었어, 망할 알베르토."

 ……인간이다. 

"지금 가겠네."

 그는 판단했다. 안타리우스는 회사, 연합 양 측에 사람을 심었다. 자신은 고립되었으며, 능력자 한 명 단위로는 상태를 바꿀 수 없다. 능력자들이 일당백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판을 뒤엎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므로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고립 상태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부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부대를 파견하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도 없었다. 이 정도는 회사의 참모진들 정도면 어렵잖게 저울질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렉슬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냉정하게 판단해."

 그를 살려 보낼 수 있다.

"알베르토 경."

"그래."

"지금 네가 가야 할 곳은 어디지?"

"……지원부대와 합류해야 하네."

 드렉슬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 되었다. 

"내가 네 신념이라는 말 아직 유효한 거, 맞지?"

 그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입맞춘 날, 그는 자신이 그의 신념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자신이 깨달았을 때에는 손 쓸 새도 없었기에 자신은 겸허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속삭였다. 

"언제까지나."

 드렉슬러는 통신기를 박살냈다.


 그 때와 똑같았다. 자신은 통신기를 부수고, 신나게 창을 놀리며 싸우다가,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을 때 거짓말처럼 부대와 함께 도착한 그가, 종래에는 자신 대신 목숨을 잃는―

"알베르토."

 드렉슬러는 처참하게 박살난 그의 투구를 벗겼다. 희번득하게 뜨여있는 눈을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감기고, 피로 범벅이 된 갑주를 허망하게 바라보는 자신, 이란, 건, 다시 볼 수 없을 광경이었다.

"나의……."

 장장 육십 일 넘게 헤메어 너를 내 곁에 데려오면서 수없이 다짐했던 것이다. 나는 너를 다시는 먼저 떠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로라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왜."

 네 죽음을,

"왜."

 또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그는 한참동안 시쳇더미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 그는 '알베르토 로라스'를 하나 하나 되짚어갔다. 제 곁에 있는 그의 인생은 다리오 드렉슬러가 알베르토 로라스를 처음 알게 된 날이 아닌, 알베르토 로라스의 기억을 단백질덩이에 이식하면서 시작한다.

 인간은 열 달을 기생하며 자라난다. 몸체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며 기억은 기억의 주인 만큼이나 성실했다. 기간은 오분의 일 가량으로 줄었다.


 육십 육 일. 


 너를 처음 만난 그 날 나는 울었던가 웃었던가. 기억이 본능에 우선할 수는 없었으나 결국 너는 이기적인 나의 곁에 온 알베르토 로라스였다. 기억에 본능을 맞춰갔다. 그렇게 너는 내 미련이 되었다. 흔적이었다. 아픈 손가락이었다.

 너는 알베르토 로라스이자 알베르토 로라스였다. 너는 끝까지 너다웠으므로 나는 결국 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온전히 알베르토 로라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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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zlos